시 너머 시

나는 가끔 주머니를 어머니로 읽는다/박남희

songpo 2015. 10. 9. 12:21

나는 가끔 주머니를 어머니로 읽는다

박남희

어머니를 뒤지니 동전 몇 개가 나온다

오래된 먼지도 나오고

시간을 측량할 수 없는 체온의 흔적과

오래 씹다가 다시 싸둔

눅눅한 껌도 나온다

어쩌다, 오래 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어머니를 뒤지면

달도 나오고 별도 나온다

옛날 이야기가 줄줄이 끌려나온다

심심할 때 어머니를 훌러덩 뒤집어보면

온갖 잡동사니 사랑을 한꺼번에 다 토해낸다

뒤집힌 어머니의 안쪽이 뜯어져

저녁 햇빛에

너덜너덜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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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를 어머니로 읽으니 어머니가 이렇게 가깝구나. 바지 옆에도, 뒤에도, 셔츠에도, 양복저고리에도 꼼꼼히 파견 나와 계시는구나. 손수건도 나오고 지갑도 나오고 비상금도 나오는구나. 아무것도 없을 땐 시린 손 넣기만 해도 갑북갑북 따뜻한 온기 전해주는구나. 뒤지면 뒤질수록 나오는 주머니는 어머니를 닮았구나. 시인은 가끔 주머니를 어머니로 읽는다지만, 우리 모두 어머니를 주머니로 읽는 경우가 더 많지는 않았는가? 이번 추석에도 슈퍼문보다 더 큰 어머니 마음을 보따리마다 바리바리 싸 들고 오지 않았는가?

반칠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