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포의 시

그리움이 벽이다 /김송포

songpo 2016. 8. 28. 08:24

 

 

 

그리움이 벽이다

 

김송포

 

 


북촌마을 골목은 서로 닮아 있다
벽과 벽 사이 대문만 아니라면
다 한집인 줄 알겠다
오래된 그리움이 사는 까닭이다

 


딱 저만큼의 높이로 갈라서 있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움은 그러니까 벽을 갖는 일이다 보일락 말락 아슬한
경계로 눈빛 오가는 일이다 가난을 모르던 골목길에 땅속 깊
이 나는 거울을 묻어놓았다 우물 속에 별도 은하도 허리를
꺾고 부르던 노래도 다 묻어놓았다 구들장 안의 정지에서 밥
을 짓던 불빛이 새어 나온다

 


어머니가 골목에서 소녀를 부른다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
어야지 종갓집 맏며느리의 곡소리가 담장 주름 사이로 흘러나
온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진지 삼년상을 올린 가락이 휘어진다
담벼락을 돌아 귀퉁이로 가면 애인은 부엉이 흉내를 낸다 밤
마다 소리는 창을 넘고 천변을 타고 자전거 바퀴를 따라가고

 


꽃과 새들이 음표를 달아 통과하는 도돌이표처럼 굽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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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우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가질 수 없다. 반만 가져도 다행인 줄 안다. 반달은 만월이 되기까지 갖은 노력 끝에 만월을 채우려 하지만 인간은 만월에 도달하기까지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야만 한다. 사랑도 우정도 부부도 자녀 사이에도 반만 내가 가질 수 있다면 너에게 최선을 다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멀어져 간 당신이 사라진 반달의 기억처럼 물에 반만 비추고 돌아선 여러 곡절이 내 안에 있을지라도 나는 만족할 것이다.

그리움도 마찬가지다 그리워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 그리워하고 살 순 없다. 그리움은 거의 벽에 부딪히고 암울하다. 그러나 함께 그려나갔던 골목에서의 추억이 나를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나 어린 시절 걸어갔던 골목과 골목의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추억은 어느 장소에선 문득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벽처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을 그리움이라 말하지 못하고 벽이라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