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언젠가 가게 될 해변 /이제니

songpo 2016. 10. 27. 11:24

언젠가 가게 될 해변

 

이제니

 

 

 

 

해변은 자음과 모음으로 가득 차 있다. 모래알과 모래알 속에는 시간이 가득하다. 시간과 시간 사이로 모래알이 스며든다. 미약한 마음이 미약한 걸음으로. 미약한 걸음이 다시 미약한 마음으로. 너는 너를 잃어 가고 있다. 너는 너를 잃어 가면서 비밀을 걷고 있다. 노을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슬픔은 점점 진해지고 있다. 언젠가 가게 될 해변. 우리가 줍게 될 조약돌과 조약돌이 호주머니 속에 가득하다. 흰 돌 하나 검은 돌 하나. 다시 흰 돌 하나 검은 돌 하나. 휩쓸리고 휩쓸려 갈 조약돌의 박자로.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게 될 목소리의 여운으로. 흰 돌 하나 검은 돌 하나. 다시 흰 돌 하나 검은 돌 하나. 미래의 빛은 미래의 빛으로 남겨져 있다. 언젠가 언제고 가게 될 해변. 별이 쏟아질 수도 있는 밤하늘의 저편으로. 전날의 나무들이 줄줄이 달아나던 들판이 겹쳐 흐를 때. 비밀 없는 마음이 간신히 비밀 하나를 얻어 천천히 죽어 갈 때. 물새와 그림자 사이에서. 파도와 수평선 너머로. 저녁노을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색색의 영혼을 우리 눈앞으로 데려온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서 액체가 흘러내린다. 우리는 우리로부터 달아나면서 가까워지고 있다. 그때. 무언가 다른 눈으로 무언가 다른 풍경을 바라볼 때. 그때. 그 밤의 그 맑음을 무엇이라 불러야 했을까. 그때. 그 어둠의 그 환함을 우리의 몸 어디에다 새겨 둬야 했을까. 모래 혹은 자갈 속에서. 물결 혹은 물풀 사이에서. 해변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걸음과 걸음은 얼굴과 얼굴을 데려온다. 무한히 전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간이라 부를 때. 그러니까 해변은 무언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구분 없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음과 물음으로. 물거품과 물거품으로. 언젠가 가게 될 해변. 언제고 다시 가게 될 우리들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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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시가 직접적이지 않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미술은 선과 면과 색과 질감으로 짜여 있다. 그리고 음악은 음의 고저와 장단, 강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그저 보고 들으면 된다. 이것이 미술과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다.

그런데 시는? 시는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쌓아 어떤 의미를 만들고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런데 의미란 그리고 이미지란 글자들로부터 추론되거나 상상된 것이다. 그것은 간접적이다.

시에서 글자 그것 자체로 직접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글자들을 발음할 때의 쾌감 즉 리듬뿐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는 그런 즐거움을 준다. 이제니 시인의 시는 대부분 그렇다. 일단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검은 글자들 사이로 환하게 미끄러지는 길이 생겨나고 마침내 어떤 "기억으로 가득"한 "해변"으로 우리를 이끈다. "언제고 다시 가게 될 우리들의 해변"처럼 재차 소리 내어 읽게 되는 시. 참 좋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