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용의 지리산의 피리소리 -리뷰
지리산의 피리 소리
- 여왕 진성과 고운(孤雲)
한경용
지리산에 노을 이 물들 쯤
여왕은 박제된 밀실에 있다고
산새들에게 슬픔을 전해주오.
동해로부터 충만한 빛을 받은 님
신라의 여명이라 불리길 바랐지요.
도통순관 승무랑 전중시어사 내봉공(都統巡官 承務郎 殿中侍御史 內奉供)인
최치원은 해동의 신동이니라, 당나라 헌종의 칭송에
어서 빨리 캄캄한 누리 불법 (佛法) 강화(强化)하여
그루터기마다 화엄경을 펴려 했지요.
겨울 산사의 바람은 심장을 지나고
선방에는 스님들의 옷자락이 널려 있습니다.
여왕의 기운이 농으로 타오를 때쯤
미풍과 벌 나비도 친구 사이라
만물이 온화하리라
산천초목 기름지리라 꿈꾸었습니다.
신(臣)은 성골, 진골이 아닌 육두의 신분
못에 연꽃을 피우질 못해 제 몸에 못을 심습니다.
장부는 도인 법장의 길을 위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불탑을 쌓으려 합니다.
금관이 무거우신 여왕의 뜨락에는
해마다 모란은 그늘에 피는지
솔가지처럼 소나무에 앉아 한번 생각해봅니다.
요망한 기운은 어좌(御座)에 있고
올빼미 흉한 소리 회오리로 들리는데
천자의 수레는 먼 지방에 있습니다.
나는 동해 밖에서 새로 날아와
새벽 창가 시 읊는 소리
뒤숭숭한 여왕의 가슴
암자마다 파초를 심어 주고 싶습니다.
서라벌의 풀들은 이른 봄을 기다리고
노승은 동양화 속으로 들어가
도연명으로 앉아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물이 얕으면 큰 배를 띄울 수가 없거늘
섣달그믐 바람마저 드셉니다.
이제 지리산의 피리 소리, 하늘을 가르고
격량을 헤쳐 온
풍마(風馬)는 스스로 낮은 곳에 서 있을 겁니다.*
*고운(孤雲) 최치원의 시에서 인용
< 월간 문학 2016 년 7 월 호 >
한경용 시인의 <지리산의 피리 소리> -리뷰
이 시는 현재다 오늘이다 함성이다 축제다 미리 예견한 마녀의 농락이 밀실 안에서 이루어졌다 작금의 상황에 피리소리는 고요한 한탄이지만 아버지의 한을 씻기 위해 무당의 힘을 빌려 최면을 당한 그녀는 귀를 막고 문을 닫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닫힌 밀실에서 독대하지 않았다 누구도 만나서 대화하지 않았다 고고한 여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오롯이 마녀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요망한 기운은 옥좌에 있고 천자의 수레는 먼 바깥에 있고 동해에서 우는 소리는 새벽 창가의 새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그러나 오늘은 깃발 아래의 함성을 들었는가 축제의 현장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는가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와야 하는 젊은 부부의 피켓을 보았는가 아이나 젊은이나 어른이나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모여 걸어가는 저 행진을 보았는가 여왕의 가슴에 파초를 심어 주고 싶어 하는 시인의 심장을 느껴보아라 풀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서울광장으로 모여 목소리를 외쳤다 귀가 있다면 들었을 것이고 눈이 있다면 보았을 것이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소리 없이 숨지 말고 카멜레온의 옷을 벗어버리고 내려놓아라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인파의 물결을 타고 나와서 직접 하야 하여라 물이 얕으면 큰 배를 띄울 수가 없다 돛을 달고 깃발을 세우고 가야하는 시인의 소리를 들어라 여왕 진성에게 올리는 최치원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아라 피리 소리와 비교하지 못할 국민의 외침이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시인도 목이 터지라고 외쳤을 것이다
-김송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