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팽이 / 김송포

songpo 2017. 1. 5. 23:19

 

 

 

팽이

 

김송포

 

 

돌고 있어서 어지러운 순간이 있어. 다리를 모으고 정지해 있을 때 동그란 몸이라고 했지. 달이 돌고 그림자도 돌고 돌아가야 웃는 일들이 많이 생기지. 동네 한 바퀴 돌고 있을 즈음 렌즈에 잡힌 남녀의 그림자를 보았다. 돌아가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정자 위의 난간에서 전철 개찰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헤어지는 순간까지 손을 돌리고 허리를 돌리고 입을 돌리고 지구를 돌리는 일들이 구르고 있다. 길에서 숲에서 공원에서 달빛은 입술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돌리고 혀를 돌리고 다리를 돌려야 이루어지는 찰나가 팽이의 모습으로 있다. 오랜만에 만져 본 너의 둥근 몸을 밤새 돌리며 깔깔거린다. 뾰족한 발가락을 올리고 발을 올리고 종종거리며 발레 하는 비비안의 다리가 더 길어질 것이다. 멈출까 봐 바싹 조여 붙었다 떨어졌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서 돌아가고 있다 백 년 만에 잡아 본 너를 팔꿈치로 돌려야 한다는 사실이 서럽구나. 두드리면서 가까워져야 하는 애인과 애인 사이가 멀기만 하구나. 팽이는 팽이대로 채찍은 채찍대로 너는 너대로 얼마만큼 돌려야 정수리에 닿을 수 있을까. 닿을락 말락 떨어질락 말락 너의 밑을 굴려서 즐거운 한 밤의 로맨틱

 

 

 

 

 

 

 

혹이 사라질 즈음 / 김송포

 

나는 오늘 살아 있다 나는 오늘 죽어 있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나는 죽었다 피어난다

머릿속에 혹이 피었다

여기저기 피는 저 환한 자유를 죽일 수 없다

손톱으로 각질을 떼어내도 혹은 수시로 일어선다.

내 안에 우주가 생겼다

당신이라는 커다란 우주가 매일 들락거린다

곧 사라질 당신이지만 양귀비가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있었다.

혹, 죽이면 당신이 지워질 거라고 믿었고

혹은 추울 때마다 불을 켰다

내 머리를 관통하는 출구였다

나의 몸속에 우주적인 길을 내어 피를 맑게 할 당신이 옆에 있다

누가 나에게 화관을 얹어 줄 수 있을까

이쁘다. 당신이라고 부르짖은 너는 모자였다

가을이 가면 죽을지 몰라 겨울이 오면 돌아올지 몰라

혹이 자라면 어머니가 만들어준 방에 들어가야 해

42도의 온도로 유지된 방에서 놀다 가야 해

피지 말아야 할 당신이라는 꽃은 죽다 살아나고 살았다가 죽는다.

모자를 벗어야 할 즈음 우주로 피어 있을 혹,

있다가 사라지곤 하는 당신

 

-2017. 문학청춘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