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미라는 어쩔 수 없이 / 김송포

songpo 2017. 5. 11. 19:53

미라는 어쩔 수 없이

 

김송포

 

눈을 감아도

어쩔 수 없이

한참 동안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있다

몸을 묶어 관에 가두어야 할 일이 생겼다

정사장면의 묘사를 관 속에 숨긴다

알고 있는 것을 모른다고 할 때 혓바늘이 돋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때 지워지지 않는 현장이 있다

 

하나둘씩 의심이 벗겨져 의문이 풀렸을 때

어쩔 수 없이

입을 닫고 눈을 감고 관을 닫아야 할 일이 있다

절대 관을 열어서 안 되는 것들이

파란 기와에도 유리문 밖에서도

모른 척해야 지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미라의 시체는 썩지 않게 보존되지만 나는 썩어야 살 수 있다

 

관 뚜껑에 그려진 얼굴이 박제라고 생각하자

어쩔 수 없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관을 덮고 사실을 덮고

거짓을 재울 수밖에

 

피라미드의 저주가 곰팡이 때문이라고 해도

관 속에 사실을 넣어 미라로 보존해야 할 일이 성안에 있다

 

 

 

 

 

 

뒤집힌 폭포

 

 

당신의, 당신을, 당신은 누구인가

슬그머니 다가온 당신을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의 눈이 머물던 곳이 당신의 눈빛

하나하나 흐름을 유도하여 따라가 보았다

뭐했어

물었을 때 침묵하고

말할 때마다 엉뚱한 말로 포장을 한다

아침에는 여보 하다가 저녁엔 ~세요 하다가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밑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폭포는

분노의 표출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얼어있다

사랑한다는 물이 얼다가 녹아내리듯

증오가 사그라들자 밖에 있는 물의 심장이 장난을 친다

물은 폭포가 되었다가 호수가 되었다가 벽에 부딪히고

생각은 그대로나 검은 벽이 존재한다

말문이 막혀 어이없는 장벽이

뒤집어지거나 울거나 거짓으로 흘러가거나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우스꽝스러운 형상이지만

반대편의 우주와 만났다 헤어진 이유가 폭포일 것이다

 

====<문학 선> 여름호. 201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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