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리움이 벽이다 /김송포

songpo 2017. 8. 1. 22:42

[이성수]그리움이 벽이다-김송포

시 읽어주는 남자(24)
기사입력 2017.05.04 15:53
 

 

그리움이 벽이다
                     
                            김송포

북촌마을 골목은 서로 닮아 있다
벽과 벽 사이 대문만 아니라면
다 한집인 줄 알겠다
오래된 그리움이 사는 까닭이다
딱 저만큼의 높이로 갈라서 있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움은 그러니까 벽을 갖는 일이다 보일락 말락 아슬한 경계로 눈빛 오가는 일이다 가난을 모르던 골목길에 땅속 깊이 나는 거울을 묻어놓았다 우물 속에 별도 은하도 허리를 꺾고 부르던 노래도 다 묻어놓았다 구들장 안의 정지에서 밥을 짓던 불빛이 새어 나온다

어머니가 골목에서 소녀를 부른다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야지 종갓집 맏며느리의 곡소리가 담장 주름 사이로 흘러나온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진지 삼년상을 올린 가락이 휘어진다 담벼락을 돌아 귀퉁이로 가면 애인은 부엉이 흉내를 낸다 밤마다 소리는 창을 넘고 천변을 타고 자전거 바퀴를 따라가고

꽃과 새들이 음표를 달아 통과하는 도돌이표처럼 굽는 길



4일 뻐깔롱안 골목 축소.jpg▲ 중부자와 쁘깔롱안(Pekalongan) 시내 골목의 아침풍경[사진: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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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우면 그대를 닮을 수 있을까? 매일 같은 하늘을 보고 초승달 옆으로 목성이 기우는 밤을 보내고 창문 너머로 그대를 호명하는데 나는 그대를 닮을 수 없는 것일까?

골목길 담벼락에는 귀가 없다.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듣지 않은 척 해야 한다. 내 이름이 불려도 내가 아닌 척 해야 한다. 담벼락에는 입이 없다. 나라고, 바로 나라고 말할 수 없다.

녹슨 담벼락처럼 귀 막고, 입 막고, 눈까지 막고 그대를 닮아가기만 기다리는 것. 그리움이라는 것!



이성수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대에서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이 있다. 

김태호 사진작가는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한 2002년 경부터 현재까지, 혼자 사진기를 들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과 주변 국가들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2015년에 2인 사진전 " Through Foreign Eyesㅡ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상"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