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1 / 김송포 <인천 작가 시선집 >
섬1
-당신이 소금이 되기까지
김송포
소금을 금가루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다
바닷물이 스스로 짠맛을 조절하여 신비를 만들어내죠
어머니의 양수에서 아프로디테 여신이 태어난다고 믿었죠
나쁜 액운을 쫓아버리자고요
당신은 수십 년 벌어온 소금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으니 고맙다고 절을 해요
터널을 향해 당신의 화를 소금 주머니에 넣어 말리고
멀어져가는 갑을 향해 잘 가라 인사를 해요
당신이 원하는 기운을 쫓기 위해 분노의 바구니에 공을 넣어보아요
소금이 소금을 소금으로 스미도록 간수를 빼요
나의 품에 돌아온 당신은 소금을 벌어다 주지 않아도 돼요
햇빛을 가두어 염전에서 발을 동동 굴려보세요
당신을 섬까지 오게 만든 바닷물의 주름이
볶은 소금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섬2
-승봉도
섬에 발을 디뎠다
금빛 모래 위에 발자국을 찍다가
금빛 문양을 수놓아야지
너와 내가 다녀간 것을 누가 알겠어
수작을 해야지
이름을 새기는 일이 가장 쉬운 일
장난치지 마
기록하지 마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그냥 하트라고 하자
고개 숙이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억지 부리지 마
두 달 만에 만나 면사포 쓰고 삼십 년을 잘도 버티며 살았지
오르막을 걷고 숲속을 걷고 도로를 걷다가 뒤로 돌아가고
울먹울먹 손을 잡고 갑판 난간에 서서 방파제를 기둥 삼아
홈런과자를 먹으며 장외 홈런을 쳤지
업어준다기에 혼자 걸을 수 있다니까
투덜거려도 받아주는 당신,
불쌍하다고 하지 않을게
햇빛 받은 물살이 은갈치처럼 눈부셔도 안경을 쓰지 않을게
보드라운 승봉도 모래를 어루만지며 걸어요
섬3-다리가 놓인 섬을 돌다가
다리가 문어처럼 놓여 있다
다리만 몇 번씩 건너며 섬을 오간다
다리란 너와 나를 이어주는 인연이라지만
섬 주민들이 육지를 넘나들며 불편이 없을 것이라 믿었던 다리.
다리 건너고 나면 또 다리가 나오는 길이가 아픔만큼 길다
바다에 점 하나 박혀 물감 찍어놓은 뭉게뭉게 떠돈다
내 다리는 어디 가고 네 다리만 하염없이 길어 쓰라림만 피고 진다
삼십 년 전에 사놓은 땅은 잔풀만 무성하고 허황한 땅이란 걸 알았다
다리만 놓인다면 부자가 될 거라고
몇 억씩 투자한 아줌마들은 원망의 다리라며 울부짖는다는 것을
기획 부동산에 속아 눈물 흘리는 사람들은 이 다리를 걸었을까
다행히 조금 투자하여 그저 잊어버리고 살라고
천만다행이라고 부동산업자가 위로한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풀밭의 증거를 지우기 위해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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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송포
약력: 2013년 <시문학>등단, 시집 <부탁해요 곡절 씨>, 푸른시학상 수상, '성남FM방송 김송포의 시향'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