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네트 /고영민
songpo
2019. 10. 16. 16:40
네트
고영민
탱자나무 생울타리에
노란 탁구공들이 박혀 있다
누가 있는 힘껏 스매싱을 날렸는지
네트 한가운데
공은 깊숙이도 박혀 있다
가시에 찔리며
겨루었던
너와의 길고도 힘겨웠던
맞-드라이브
5월의 탱자꽃 시절
아무리 조심해도 너에게 손을 넣을 땐
매번 손등을 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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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와 탱자나무 울타리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부각되는 이 시는 설명이 오히려 티가 될까 조심스럽다. 시인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탱자가 열려서 떨어진 모습을 보고 탁구공을 떠올리고, 울타리를 탁구대의 네트로 환유하면서 너와 나의 ‘사랑의 공방전’으로 사태를 확장시킨다. ‘탱자와 울타리=탁구공과 네트’의 동일 이미지를 절묘한 감각으로 매칭하고 있다. ‘저것은 무엇과 닮았다’는 발상의 궤도를 따라 시인은 대상이 전파하는 비의를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캐치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너에게 손을 넣을 땐/ 매번 손등을 긁혔다”는 마지막 결구에서 탱자나무 가시의 원시성과 가시에 찔리며 금기를 넘나드는 손등의 통각이 살아 핏방울처럼 선명한 하나의 이미지로 전달된다.
정병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