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무구함과 소보로 / 임지은

songpo 2020. 4. 14. 17:19

 

임지은

 


선생님은 지은이를 기억합니다
나는 지은이가 아니지만, 지은이일 수도 있습니다
얼굴 속에 얼굴을 넣고 다녔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매점엘 갑니다
나는 지은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합니다

눈을 뜨자 밥상이 차려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지은이를 지우고 다른 얼굴을 답니다

콩자반을 집어 먹으며 내가 몇 개인지 셉니다
끝까지 세기 어려워 다시 처음부터 셌을 뿐인데 무한히 늘어난 검은 눈동자들이 한꺼번에 나를 쳐다봅니다

욕실로 달려가 비누로 얼굴을 문지릅니다
표정은 자꾸 손끝에서 미끄러지고 나는 나를 몇 번이나 놓칠 뻔했지만 얼굴들을 잘 씻어 서랍 안에 넣어둡니다

수건처럼 잘 개켜진 옆면들, 내가 너인 순간들
함부로 뒤집어 벗어 놓은 이 얼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베란다에 가보면 엄마가 내일 사용해야 할 얼굴들을 빨랫줄에 널어두었습니다

 

 

생각이 손끝에서 언어로 바뀌는 동안, 언어는 미끄러진다. 동질감을 빌미로, 혹은 유사성에 기대어, 빗면을 흘러내리는 눈덩이처럼 원래의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형태로 미끄러진다. 숙련된 이들은 그것을 원래 목표한 지점, 혹은 말하려던 것에서 멀어지지 않고 입체적이며 새롭게 일체화 시킨다. 반대로 미생인 어떤 이들의 시는 미끄러지다가 목표를 잃고 마침내 미끄러짐을 목표로 삼았다는 듯이 홀려 어딘지 모를 이상한 곳에 가 닿기도 한다.

어쨌거나, 여기 임 씨 중에 시로는 그중 근사해 보이는 임지은이 있다. 시에서의 '지은이'는 계속 얼굴이 바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은이인 것 같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재밌기까지 하다. 이 시에서 엄마는 눈(지은이)을 낳은 주체이면서 눈을 눈덩이로 굴리는 당사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엄마의 손끝을 통과하는 어떤 것이어도 되는 이상한 마술을 동반한다. 어째서 이런 마술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시를 읽는 나를 끄덕이게 하는지. 한 문장을 이루는 언어 간의 간극, 문장과 문장 사이로 생겨나는 넓이를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시는 이제껏 당신이 알던 기존의 시에서 조금 넓게 번졌으나 여전히 거기에 속한, 비유하자면 '높은 음을 내는 아코디언의 좁은 주름이 낮은 음을 낼 때의 벌어진 주름 역시 여전히 아코디언인 동안이라는 것'일 것이다.

확실히 세상은 넓고 거기 머무는 이들의 다양함은 무한 하구나. 그러나 그것들을 다 끄덕이기 전에, 그것이, 그 방법이 어떤 방식의 짓기, 혹은 사유화를 통해 고유한 형식을 가지는가. 그래서 마침내 새로움에 이르는가,를 헤아려 보아야 하겠지. 그럴 때 우린 낮은 도와 높은 파가 왜 서로 다른 주름의 간격을 통해 발현되는지를 깨닫게도 되리라.

가을이 깊어간다. 누가 부르기 전까지 나뭇잎은 마지막이라서 더욱 푸르다.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