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아, 그랬습니까 /금은돌

songpo 2020. 4. 29. 10:22

, 그랬습니까

 

금은돌

 

 

내 사람이 될 수 없을 때

당신은 참 좋은 분이라 말해 드립니다.

 

이불 안에 품을 수 없는 행성일 때

다소 쓸쓸한 구두코 주름과 마주칠 때

두툼하고 낮은 언덕 같은 목소리에 기대어 보고 싶을 때

 

같은 버스 안에서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

치마를 먼저 걷어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만으로

내 칼을 무디게 해 줄 수 있는 호흡이어서

 

막 내린 공항버스에서 다른 여자의 짐을 내려 줄 때

비집고 올라오는 질투가 좋아라.

괜스레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며

먼지 날리도록 웃어보는 것이 좋아라.

행성 근처에 맴도는 것이 좋아라.

 

불가능, 이라는 낱말로 차오르는

넉넉한 막막함이 좋아라.

구두코 주름진 그늘 아랫자락에서

비행기 좌석 앞, , 옆에서

부서지는 먼지를 만질 수 있는 것만으로

 

깊은 설렘, 당신이 모르도록

엷은 인연, 그대가 모르게

 

10년 뒤 어느 창가에서

벙어리 손짓으로 고백해 보고는

, 그랬습니까? , 그랬습니까?

하는 말, 듣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