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개의 밤이 깊어지고/ 강성은

songpo 2020. 5. 13. 11:47

개의 밤이 깊어지고

 

강성은

 

 

개가 코를 곤다 울면서 잠꼬대를 한다 사람의 꿈을 꾸고 있나 보다 개의 꿈속의 사람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개가 되는 꿈을 꾸고 울면서 잠꼬대를 하는데 깨울 수가 없다

 

어떤 별에서 나는 곰팡이로 살고 있었다 죽은 건 아니었지만 곰팡이로서 살아 있다는 것이 슬퍼서 엉엉 울었는데 아무도 깨울 수가 없었다

 

개는 나를 바라보는데

깨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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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자고 있다. 코를 골면서 자고 있다. 코를 골면서 자다가 낑낑 잠꼬대를 하고 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혹시 "사람의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개가 되는" 그런 꿈. 그런데 혹시 나는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은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쩌면 하루 종일 팔랑팔랑 날아다니다 메꽃에 앉아 잠시 졸던 나비의 잠 속은 아닐까. 개는 그런 나를 차마 "깨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슬프든 행복하든 꿈속이든 꿈 밖이든 일생은 도무지 갸륵할 따름이다. 갸륵해서 다만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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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외 3편)

 

 

 

 

강성은

 

 

 

고양이가 책상 위에 잠들어 있다

고양이를 깨우고 싶지 않아

나는 따뜻한 음식을 만들기로 한다

손에 든 감자 자루를 놓치자

작은 감자알이 끝도 없이 굴러 나온다

쏟아지는 감자를

어찌할 수 없어 멍하니 바라보는데

갑자기 라디오가 켜지고

어제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와

밖에선 종말처럼 어두운 눈이 내리고 있고

나는 이제 잠에서 깨버릴 것 같은데

집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고양이가 너무 오래 잔다

 

 

 

Ghost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땐 죽은 여자 같더니

죽고 나선 산 여자처럼

 

밤의 정원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닌,s 작은 새처럼

밤하늘을 떠다니는 검은 연처럼

 

장갑을 끼면 손가락이 생겨나고

양말을 신으면 발가락이 생겨나고

모자를 쓰면 머리가 생겨난다

 

책을 읽으면 눈이 생겨나고

음악을 들을 땐 귀가 생겨나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입술이 생겨나는데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입이 있어도

말은 못한다

 

 

 

카프카의 잠

 

 

 

그는 야근을 하고 있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라고 쓰자 그는 잠이 쏟아졌다

 

그가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뒤적이고 있을 때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이 야심한 시각에 사무실을 방문한 사람이 누굴까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걸어가 문을 열어주려 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굳게 잠긴 문을 열어보려 애쓰다 이 문은 밖에서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유심히 문을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럽게 두드려 보았다 똑똑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갇힌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밤에

눈 내리는 사무실에

어마어마한 눈이 쏟아지고 쌓이고 있는데

건물이 눈 속에 파묻힐 것 같은데

 

그는 나가지도 못하고

그를 도와주러 올 이 하나 없는 것이다

저 눈을 멈추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흰 눈은 펑펑 쏟아지고

누구도 저 희고 무서운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어

 

그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가 삶을 포기하고 나면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

모든 일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채광

 

 

 

창문에 돌을 던졌는데
깨지지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밤이면 더 아름다워지는 창문

환한 창문에 돌을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어느 날엔 몸을 던졌는데
나만 피투성이가 되고
창문은 깨지지 않는다

투명한 창문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시집Lo-fi(2018. 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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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Lo-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