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스멀스멀 옮겨 다니는 무늬 /김송포

songpo 2020. 7. 5. 08:15

스멀스멀 옮겨 다니는 무늬

 

김송포

 

 

겨울은 결코 봄을 가두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손은 잘못이 없다

창살을 만들지 않았는데 스스로 갇히어 신음하고 있다

창구 없는 무늬가 무성하여 십리 길 소나무 숲에 금모래를 찾으러 가야 한다

 

열려있는 공기는 적이다

마스크를 최대의 방어다

입을 봉하고 코를 킁킁거렸다

파괴력을 지닌 핵도 아니고 스며드는 저 무늬의 정체를 막을 수 없으니

박쥐의 혀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붙는다는 것인가

 

한 때 이리저리 간을 보며 붙어 다닌 적이 있었다

사람한테 붙으면 돈을 벌려나

책과 붙어있으면 시인이 되려나

가로등과 사귀면 골목이 열리려나

꽃이 많으면 새가 모여드려나

건물에 높이 올라가면 귀인을 만날 수 있으려나

 

수많은 날갯죽지를 펼쳐가며 벽에 붙어 다닌 흔적을 알고 있을까

너의 탓이 아니고 나의 탓도 아닌 0의 전쟁은

무한

 

골방으로 끌어들여 세포를 만들고 무늬를 만들고

하얀 복면의 칼을 만들었다

 

-<두레문학> 2020년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