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동역학
songpo
2020. 7. 25. 22:25
동역학
정숙자
하나둘 우물이 사라졌다
마을과 마을에서
‘깊이’가 밀려난 것이다
우물물 고이던 시간 속에선
두레박이 내려간 만큼
물 긷는 이의 이마에도 등불이 자라곤 했다
꾸준히 달이 깎이고
태양과 구름과 별들이 광속을 풀어
맑고 따뜻한 그 물맛이 하늘의 뜻임을 알게도 했다
하지만, 속도전에 뛰어든 마을과 마을에서 우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고를 담보하지 않아도 좋은 상수도가 깔리자
물 따위는 쉽게⸺ 쉽게⸺ 채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변질/전환되었다
엔트로피의 상자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가뭄에도 사랑을 지켰던 우물 속의 새
언제 스쳐도 깨끗하기만 했던 우물물 소리
그런 신뢰와 높이를 지닌,
옛사람, 무명 옷깃 어디서 다시 만날까
그리고는 우물가에 집 짓고 살까
⸻월간 《시인동네》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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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뿌리 깊은 달』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산문집 『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