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널린 이불/최정례
창에 널린 이불
아파트 창에 널린
햇살에 적나라한 솜이불
애국도 매국도 아닌
태극기도 일장기도 성조기도 아닌
목화솜 이불인지 폴리에스터 요깔개인지
이념도 아니고 사상도 아닌
우리의 생활
이미 비난받은
우리의 내부인 것 같은
내장을 꺼내
뒤집어놓은 것처럼
입 꾹 다문 일 가구의
내면을 햇살에 내어 말리고 있는
작은 창 가난한 방의
두툼한 저 무념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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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속옷, 속살에 닿는 물건. 정면으로 바라보면 미안한 생각마저 들게 하는, 늘 부끄러운 표정의 사물, 이불입니다. 좀처럼 노출이 불가한 물건인데 누군가 적나라하게도 이것을 ’작은 창‘에 내 널었습니다. 예리한 시선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국경일의 태극기나 걸려야 할 자리였으니 가히 ’생활‘의 국기라 불릴 만합니다. 늘 ’애국‘이니 ’매국‘이니 떠드는, 소위 직업적 애국자들, 도덕주의자들에게는 불경할 풍경이기에 “이미 비난받은/ 우리의 내부인 것 같은” 풍경이고 더 나아가 ’내장‘ ’뒤집어놓은 것‘ 같은 반항적 ’회화(繪畫)‘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국적 이전이고 이념 이전이고 정치 이전입니다. ’가난한 방‘ 앞의 ’두툼한 저 무념무상‘이 실은 심대한 사상의 풍경임을 이 예민한 시인이 제시합니다. 가만히, 자세히, 가까이 좀 보라는 뜻이지요.
장석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