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김송포/ 정리의 신은 각을 들여다본다

songpo 2021. 6. 13. 18:07

정리의 신은 각을 들여다본다 /김송포

 

 

가지런하게 꽂혀 있다는 것은 닫혀 있다는 것

모서리가 흐트러져

자유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던 날이 있다

 

낡은 물건을 버리면서 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없어도 될 목차를 여태 안고 살았던 것

 

아주

조금만

극히

소량만 먹어도 고프지 않을 만큼 지니고 살아야 할 것들이다

 

눈을 뜨면 보이기 시작하는 목록

서랍 속의 각을 살려야 한다는 눈이 생긴 것이다

두서없는 나열의 각도가 시선을 끌고

기억발전소의 무게가 중심을 무너뜨렸어

 

책받침 대가

잠시 본분을 망각한 것

호흡을 가다듬고

살아 있는 글자를 먹어야 해

 

신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잊고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지

 

동그라미를 굴려

각을 지우고

먼지와 선을 긋고

의자를 짓무르게 할 시간을 찾던 중

 

정리의 신은 각을 구부려 문장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