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머리카락/ 기억의 그늘

songpo 2013. 7. 26. 22:16

머리카락/김송포
 
왕버들이 물 속에 잠긴다

반은 잠기고 반만 몸을 내어 놓은 채
주산지의 물안개에 서리를 맞는다
우아한 자태의 여신처럼
물 속에 다리를 담가
뿌리를 뻗어 펼쳐 나가고
위로는 구름까지 손을 내밀고 있다
 
비를 맞으며 하얀 적삼에 속을 보인
여인의 뒷모습,
신비의 육체를 내밀고
허리까지 늘어진 이파리
바람이 살랑이는 어스름 저녁
물빛에 들락날락
휘감아 돌고 돌아 나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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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그늘/ 송포
 
잊혀지기 싫다고 손 끝을 잡아보았지만
그만 놓아버린 과거의 기억을 놓고 말았나요

눈물로 발버둥쳐도 안타까운 기억의 잔재가
하루아침에 모두 없어진 그늘
미움, 슬픔, 기쁨, 고통,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지우고 처음으로 돌아 간 당신
흔적이 두려우셨나요.

두 눈을 감고 용서에 대한 구애였나요
알츠 하이머라는 선고를 받고 무의 상태로 간
당신의 얼굴은 거룩함입니다
인생은 무거운 것도 아니고 가벼운 것도 아닌,

칠십 여덟의 생에 그동안 살아온 자국을 지우고
걸음마를 시작하며 날개 달고 가고자 하셨나요

그늘조차 남기고 싶지 않아 나무이기를 거부하는
당신의 얼굴은 천상 아기입니다
이제 편안히 짐 내려놓고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하십시요
당신의 뿌리는 이제 새싹처럼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