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역
-포항역에서 울리는 파도소리
기차는 바다로 난 길을 달린다 동해의 끝으로 달리던 열차가 포항역에서 멈춘다. 갓난아기를 안은 새댁이 포항역에서 내린다. 철길도 아니고 푸른 바다를 달리는 일이 두렵기만 하다. 갓 결혼한 새댁이 망망대해를 노 젓는 것처럼 불안하다. 낯선 항구에서 고기 잡을 수도 없고 바다를 헤엄칠 수도 없다 백일 된 아기 안고 역 앞에서 기다리자 철모를 쓴 남편이 군청색 제복 차림으로 마중을 나온다. 골목을 따라 불빛이 보이는 바다 끝의 집에 아기를 누인다. 햇살은 간간이 비추고 포구의 바람은 세차게 몰아치고 파도는 집의 창문을 두드리듯 철썩거린다. 기적 소리가 들썩거리며 울리는 소리는 고향에서 밥 짓는 연기처럼 아득하다. 역전 골목에서 새벽시장 보아가며 아기 키우던 울음소리가 이십 여년이 지난 지금 귀에 쟁쟁하다 이제 바다로 갈 수 없는 포항역의 기차가 귓가에 멈춘다.
꽃다발 들고 환영나올 것 같은 푸른 역사 앞에 피켓 들고 누가 마중 나올 것인가, 기억의 파도처럼 포항역의 종을 누가 울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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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죽도시장 안쪽에 구부정한 할머니와 손자가
가스 불 위의 기계에 옥수수 넣고 찰카닥 마음을 잠근다
바깥을 빙빙 돌며 떠돌던 손자의 꿈이 그 안에서 터트려질까
가난한 내림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인지
숙달된 손놀림으로 내일을 이어가겠다는 것인지
손자의 속내 들여다보기 위해 말을 걸어도
묵묵하였다
나는 무심코 의자에 앉아 있다
뻥
뻥
철렁 놀란 소리 이기지 못해 귀를 막았다
총각, 귀 아프지 않아요
귀마개라도 하지 그래요
어설픈 걱정으로 손자의 귀를 막게 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 갑자기 꿈이 쉽게 튀겨지지 않듯
느닷없이 벼락부자가 생기지 않듯
올챙이가 꽹과리 소리 내지 않듯
신생아가 사춘기로 널뛰기하지 않듯
나는 뻥 튀겨진 그 날을 기다리지만
손자의 뻥튀기는 죽도시장에서 오래오래 울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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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메기의 미련
겨울옷을 입고 꽁치 먹으러 간다.
바닷가 주변에 빨랫줄처럼 매달아 놓은 비릿한 냄새 맡으러 간다.
학인지 청어인지 꽁치인지 모를 날렵한 생도가 꼿꼿하게 우리를 본다.
바다에서 고기를 낚다가 배고픈 허기였을까
해풍에 나란히 줄을 세워 말린 상처를 씻어보려 한 노래가 사람을 부른다
미역 줄기에 마늘과 종파를 얹어 살짝 얼린 꽁치가 입안에서 감친다
겨울 볕에 몸은 근육질 남자다
이 집 저 집 거리로 나온 행군의 모습이 아득하다
먹어 본 사람은 안다. 울어 본 사람은 안다. 추위에 떨어 본 사람은 안다
포항을 떠나 온 뒤 겨울밤이면 출출할 때 과메기라는 이름을 간판에서 찾는다
고향의 맛처럼 혀끝에 아릿하게 느껴지는 미련이 이런 것인가
잃어버린 청춘, 바다에서 구하는 것인가
가출한 고양이가 돌아온 것처럼
잊었던 집을 찾아 삼십 년 동안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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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호미곶 바다 가운데 두 손이 해를 뜨고 있다
흙빛 닮은 바다에서 검은 눈 뜨고 숨 쉬고 있다 한들
수평선 끝까지 내밀 수 있는 손 있다 한들
바다 가운데 상생의 손이 해 받친다 한들
꺼지지 않는 마음의 불씨 있다 한들
우리의 호흡 삼킬 듯 달려드는 바다가 있다 한들
밥숟가락 입에 넣을
손이 없으면 무에 그리 대단한 영웅이겠는가
등대에서 비바람 운다고 울타리 만들어 달려온 세월
소나무가 적어 가려진 그늘이 없다고 보채던 날들
높은 파도에 방파제 되어 주지 못한다고 밀려가던 날
참고 참으면 손바닥이 해를 가려주겠지
상생의 손 위에 해 뜨거든
푸른 바다에 기대어 사연을 찾아가자
바위에 맨 밧줄 놓지 않을 짙은 방패처럼
해를 받치고 있다
화해의 손, 잡기 위해
언젠가 임진각에서 물새처럼 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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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포 피데기
배에서 갓 잡아 온 오징어가 파닥거린다
바닷가 모래 위에 머리 까딱거리며 여행길 보고 있다
몸통이 구부러져도 그녀의 눈빛은 반짝거린다
날렵한 몸매로 당당하게 햇볕을 쬔다
반만 태울 거예요
구룡포에서 안경 끼고 모래를 거니는 사람들이 그녀를 본다
백사장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등을 구부리는 은빛 처녀, 태양에 걸려있다
몸을 뜨겁게 녹여 살 속에 있는 진물까지 말려놓을게요
바다에 숨겨놓은 순결처럼 진주처럼 오래도록 꿈틀거린 비늘이 있다
감기지 않는 눈빛으로 오염된 뿌리 씻어 주고 먹물 흘리고 간 오징어가 백사장에 있다
갈색으로 물 들이고 머리 휘날리며 구릿빛 아가씨 보러 구룡포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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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사지
화려하게 앉은 절은 아니었다
물 건너고 산 올라 숲에서 고요히 울고 있다
누가 도굴했는지
탑 끝은 동강이 나고 아래엔 도려낸 자국이 있다
근사한 절은 아니어도 숲 속에 의연하게 서 있는
탑의 자태,
옛 절터의 흔적이 초라하다
옆에 나란히 있는 형제 탑마저 엄숙하다
더는 복원할 필요 없이 그 자태만이라도
부서져 나가지 않고 지켜 준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아한 탑인 줄 아는가
공들이지 않은 자연의 몸,
우리가 바라는 본래의 자유가 꺾이지 않기를
외로운 탑 흔들어 깨우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