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쌀 씻는 남자 / 김륭
songpo
2014. 10. 10. 20:43
김륭(1961∼ )
쌀을 씻다가 달이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밤을 밥으로 잘못 읽은 모양입니다 달은, 아무래도 몰락한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변기통 같습니다
아내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습니다 속이 시커멓게 탄 사내에게 고독이란 밥으로 더럽힐 수 없는 쌀의 언어입니다 문득 살이 운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밤을 밥이라 썼다 지우고, 쌀을 살이라고 썼다가 지우는 사내의 입이 문밖 나뭇가지에 걸립니다
사락사락 밤을 함께 지새울 여자가 있다면 처녀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불보다 물이 부족한 밥입니다 고물 전기밥통 가득 살이 타는 밤입니다
달이 생쌀 씹는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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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밥으로 잘못 읽은 모양입니다’…. 마음의 허기가 몸의 허기를 부르는 깊은 밤. 밥을 먹겠다고 쌀을 씻는 독신남의 외로운 심사를 밤과 밥, 살과 쌀을 의도적으로 뒤섞으며 펼쳐 보인다. ‘쌀을 살이라 썼다 지우는 사내’라니, 화자 몸의 허기는 따뜻한 밥과 더불어 따뜻한 여자의 살을 향한 것이다. ‘사락사락 밤을 함께 지새울 여자가 있다면 처녀가 아니었으면 좋겠’단다.
성적으로 열리지 않은 처녀의 차가울 몸은 원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경험이 풍부한, 원숙한 여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일 테다. 몸과 마음을 대등하게 주고받을 여인, 화자의 고독을 이해하고 지켜줄 여인. 그렇게도 화자에게는 저의 고독이 소중한 것이다. 한밤에 제 손으로 쌀을 씻어 안치는 처량한 신세라도 ‘아내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단다.
밥 좀 제대로 먹어보자고 더럽힐 수 없다는 화자의 신성한 고독! 화자를 저 밑바닥으로 끌어당기지 않고 ‘문밖 나뭇가지에’ 달로 걸린 고독! 그런데 불쑥불쑥 물밀듯하는 이 외로움을 어쩔까나. ‘달이 생쌀 씹는 소리를 듣습니다’, 달이 ‘생살’ 씹는 소리를 듣습니다.
‘달은, 아무래도 몰락한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변기통 같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구가 김륭의 다른 시 ‘밥의 도덕성’에 있다. ‘밥은 여기저기 개밥그릇처럼 뒹구는 얼굴을 화장실 변기 위에 평등하게 앉혀놓는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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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사과
이규리
전화로 주문을 했더니 그 남자는 먹기엔 그냥 괜찮다며 흠 있는 사과를 보내주었다
흠, 흠, 내 흠을 어떻게 알고서
어제오늘 이미 여러 차례 떨어진 내 하관은 바닥이니 거리에 떠다니는 삼엄한 얼굴은 또 무슨 생각들을 놓친 낙과냐
비나 번개를 안아
저 흠들을 자신의 몸으로 모서리를 삼킨 거지
말도 못하고 심중에 울음을 넣은 거지
그렇게 견딘 시간은 울퉁불퉁 붙고 아물어
과도의 끝이 닿자 이제야 길었던 통점이 떠나가고
뭐, 큰일이나 날 것 같았던 당신의 법도 잘려나가고
자른 채로 질려 나간 채로 그냥 묻어 살기에 괜찮으니 도리어 면면하니
흠 있는 존재, 단물까지 나는 이 서사의 사랑스러움을 견딜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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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리고 바람 차가워지면 사과의 단맛도 깊어지지요. 아침마다 단단한 사과 과육을 베어 먹으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피도 맑아지는 느낌. 이규리의 「청송 사과」는 햇빛의 양명함이 넘치는 가을 아침에 읽기 좋은 시네요. 크고 매끈한 사과의 상품가치가 더 높지만 흠 있는 사과가 더 맛있지요. 시인은 흠 있는 청송사과를 받아놓고, 그 흠들이 “비나 번개”를 안은 것이며 “몸으로 모서리를 삼킨” 결과라고 일러줍니다. 흠은 울퉁불퉁한 세월을 견디느라 생겨난 것. 하긴 평생 살며 한두 가지 흠을 갖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을까마는 흠은 기어코 내면의 통점(痛點)이 되고 콤플렉스가 되지요. 사과는 단맛이 그 격을 결정짓고, 사람은 인격이 곧 그의 격이지요. 이 가을엔 아무 흠이 없다고 뻔뻔하게 우기는 사람보다는 제 영혼에 흠이 많다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과 더 자주 만나고 싶어요.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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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酌(독작)
류근(1966년~ )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진실로 작별과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진실로 사랑한 사람과 작별할 때에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이승과 내생을 다 깨워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눈 감고 독하게 버림받는 것이다
단숨에 결별을 이룩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아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 지르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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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카모토 신야의 영화 ‘쌍생아’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별의 악수를 하고 좌우로 멀어져 간다’. 치열하게 사랑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악수와 함께 좌우로 멀어져 가는 이별의 시간.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라고, 연인을 독하게 떠나보낸 뒤 홀로 마시는 술처럼 쓰디쓴 술이 있을까. 그러나 사랑했던 날들처럼 이별도 치열하게, 마치 온 나무를 다 불 지르고 혼자 우는 꽃처럼….
황병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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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김신용(1945~ )
참, 동전 짤랑이는 것 같기도 했겠다
한때, 짚불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구워지던 것
비늘째 소금 뿌려 연탄불 위에서도 익어가던 것
그 흔하디흔한 물고기의 이름이 하필이면 錢魚라니……
손바닥만한 게 바다 속에서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어쩌면 물속에서 일렁이는 동전을 닮아 보이기도 했겠다
통소금 뿌려 숯불 위에서 구워질 때,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그 구수한 냄새가 풍겨질 때, 우스갯소리로 스스로 위로하는
그런 수상한 맛도 나지만, 그래, 이름은 언제나 象形의 의미를 띠고 있어
살이 얇고 잔가시가 많아 시장에서도 푸대접 받았지만
뼈째로 썰어 고추장에 비벼 그릇째 먹기도 했지만
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냄새는, 헛헛한 속을 달래주던
장바닥에 나앉아 먹는 국밥 한 그릇의, 그런 감칠맛이어서
손바닥만한 것이, 그물 가득 은빛 비늘 파닥이는 모습이
그래, 빈 호주머니 속을 가득 채워주는 묵직한 동전 같기도 했겠다
흔히 ‘떼돈을 번다’라는 말이, 강원도 아우라지쯤 되는 곳에서
아름드리 뗏목 엮어 번 돈의 의미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바다 속에서, 가을 벌판의 억새처럼 흔들리는 저것들을
참, 동전 반짝이는 모습처럼 비쳐 보이기도 했겠다
錢魚,
언제나 마른 나뭇잎 한 장 같던 마음속에
물고기 뼈처럼 돋아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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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전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은 이제 무색해졌다. 봄 전어도, 여름 전어도 대박들이다. 그럼에도 전어 하면 시월, 가을 하면 전어다! 뼈째 먹는 전어회(무침)는 그 식감과 단맛이 단연 최고다. 고소한 맛을 원한다면 구이로 먹어야 한다.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때까지, 잘잘 기름이 돌 때까지, 노릇노릇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야 제 맛이다. 잔가시는 물론 뼈, 머리, 내장까지도 다 먹어야 고소함의 깊이가 완성된다. 그 맛이 얼마나 고소했으면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이라 했을까.
그런데 전어는 왜 이런 ‘錢魚’일까? 옛글에 따르면 가을 전어 한 마리가 비단 한 필 정도였음에도 맛이 좋아 돈 생각하지 않고 사먹었다고 해서 전어라 했다지만, 시인의 말대로 “손바닥만 한 게” “(은)동전이 짤랑이는 것 같기도 하”고. 헛헛한 속을 달래주는 그 기름진 맛이 “빈 호주머니 속을 가득 채워주는 묵직한 동전 같기도 해”서 전어가 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니 나는 이제 전어를 ‘쩐어’라 부르겠다. 어쩐지 돈 생각이 “마른 나뭇잎 한 장 같던 마음속에/ 물고기 뼈처럼 돋아”나는 것 같지 않은지. ‘떼돈’ 생각이 굴뚝같은 이 가을엔 어쨌든 쩐어다!
정끝별(시인,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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