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지비 /이상

songpo 2015. 2. 21. 16:41

지비紙碑-어디갔는지모르는아내



지비1

아내는 아침이면 외출한다 그날에 해당한 한 남자를 속이려 가는

것이다 순서야 바뀌어도 하루에 한 남자 이상은 대우하지 않는다고

아내는말한다 오늘이야말로 정말 돌아오지 않으려나 보다 하고 내

가 완전히 절망하고 나면 화장은 있고 인상은 없는 얼굴로 아내는

형용처럼 간단히 돌아온다 나는 물어 보면 아내는 모두 솔직히 이

야기한다 나는 아내의 일기에 만일 아내가 나를 속이려 들었을 때

함직한 속기速記를 남편된 자격 밖에서 민첩하게 대서代書한다.



지비2

아내는 정말 조류였던가 보다 아내가 그렇게 수척하고 가벼워졌

는데도 날지 못한 것은 그 손까락에 끼었던 반지 때문이다 오후에

는 늘 분을 바를 때 벽 한 겹 걸러서 나는 조롱鳥籠을 느낀다 얼마

안 가서 없어질 때까지 그 파르스레한 주둥이로 한 번도 쌀알을 쪼

으려 들지 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 열고 창공을 쳐다보면서도 고

운 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 않았다 아내는 날 줄과 죽을 줄이나 알

았지 지상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비밀한 발은 늘 버선 신고 남

에게 안 보이다가 어느 날 정말 아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 방 안

에 조분鳥糞 냄새가 풍기고 날개 퍼덕이던 상처가 도배 위에 은근하

다 헤뜨러진 깃 부스러기를 쓸어 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

운 것을 얻었다 산탄散彈 아아 아내는 조류이면서 원체 닻과 같은

쇠를 삼켰더라 그리고 주저앉았었더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 냄새

도 나고 천근 무게더라 아아.



지비3

이 방에는 문패가 없다 개는 이번에는 저쪽을 향하여 짖는다 조

소嘲笑와 같이 아내의 벗어 놓은 버선이 나 같은 공복空腹을 표정하

면서 곧 걸어갈 것 같다 나는 이 방을 첩첩이 닫고 출타한다 그제야

개는 이쪽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슬프게 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