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가림

songpo 2015. 7. 17. 12:28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이가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不在)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시집『유리창에 이마를 대고』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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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대중가요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시에서도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이 시 역시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로 인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한 연시로 읽힌다. 지금껏 적지 않은 시에 단상을 붙여 소개해오면서 이 같은 이별과 그리움의 정서가 묻은 글도 꽤 포함되었지 싶은데 또 그리움의 가락이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한 시인에 대한 추념의 정 때문이다. 4년간 사지가 마비되는 루게릭병을 앓다가 지난 14일 저녁 시인께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인인 김원옥 시인은 2년 전부터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간호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남편은 평범했지만, 시에는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이라며 “20대 초반에 등단해 거의 한평생 시를 사랑했고, 병상에 누워서도 휴대전화로 글을 쓸 정도로 애정이 많았다”고 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