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의 미아
김송포
폐허가 된 궁전은 영화촬영지같이 있다 간간히 부서진 벽과 창문 틈으로 나는 유물처럼 간다 골목과 골목에서 예배와 성도들의 음악을 훔친다 왼쪽으로 나가면 오른쪽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나가면 왼쪽이 나오는 미로 속에 내가 있다 어느 쪽에 있어야 당신이 보이는 지 내가 보이는 지. 성인의 발가락을 만지며 나를 찾으려고 부지런히 발을 비볐다 어리석은 기도를 되풀이하다가 낯선 나라의 조각은 사과를 날카롭게 깎듯 바라보지만 궁전을 간신히 빠져 나온다 그저 뿌리 없는 조상의 발을 만지는 것처럼 느낌이 없는 찬양처럼 왕이 살았던 궁전이거나 학살했던 노예들의 수용소거나 궁전과 벽과 벽 사이에서 잘 먹고 잘 살았던 왕과 왕비와 신하들은 이미 공중분해 되었다 디오클래시안 궁전의 성당 종소리는 신의 목소리로 들리다 말다 사라질 일, 행여 몸 하나 잃어버릴까봐 버려질까봐 전전긍긍하며 돌고 돌다 만난 나는 구르는 미물이다
기침과 콧물 사이
무심하게 흘러간 너는 여름을 보내고
파도와 바람을 이겨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손도 젖무덤도 떨림도 다 가졌거늘
한파의 기침쯤이야
수십 년 해초와 바위와 부딪치며 이겨낸
굴 껍데기처럼 단단해져
겨울과 맞서 싸우는 것은 식은 커피 마시는 일과 같은 것,
바다가 깊어 파고드는 쇳소리라 치자
순간 정적을 깨는 소리 일뿐
잠시 눈 한번 크게 뜨고 놀랐다 치자
바닷물은 언제든 밀려들다 사라지는 것 일뿐
콧물이 주책없이 흐르면 닦는 것처럼
너를 뒤돌아볼 일,
어느 세월에 저 많은 열이 철철 거리고 있던가
아직도 부드러운 잇몸으로 넘어가고 있는가
흘러서는 안 될 소리가 환절기에 강물로 바다로 넘쳐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사라져도 무디어질,
무심한 듯 고결한 듯 헤픈 듯 거리로 나온 말들이
용케 너와 나 사이사이를 뛰어 가고 있다
-<시와 미학> 최종 원고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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