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 마리 고양이

15도의 얼굴 /김송포 단발머리에 분홍색 치마, 아기 업은 소녀는 왜 무엇 때문에 방향을 달리하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까 똑같은 모양이지만 약간씩 다르게 얼굴과 신발이 동쪽을 향해 있다 한 소녀는 서쪽을 바라보며 뭔가 급하게 가야만 할까 조금씩 방향을 틀며 얼굴과 얼굴, 신발과 신발, 아기와 아기, 각각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미지의 그리움이다 진선미가 있듯 얼굴은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악착같고 쓸쓸하고 편안 해보이는 각이 있다 뒷모습을 보는 너는 가난하다 측면을 보는 신발은 저항하는 듯하다 마침내 정면을 보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려 아기 얼굴이 반쯤 보이고 신발도 같은 방향으로 걷는 저 소녀는 온전한 15도의 각도로 왕관을 썼다 미국 경매에 나온 아기 업은 소녀의 그림 한 장이 13억이란다 그림을 모..

제비동자 /김송포 인제시 하추군 숲속에 나비가 들었다 추자가 많아 추라고 하는 나무 그늘 밑에 주황색의 제비가 꼬리를 흔들며 앉아있다 동자스님은 오세암에 겨울양식을 구하러갔다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 죽었다 숲속에 다녀온 뒤 나의 다리에 붉은 반점들이 피었다 점들은 나의 손에 닥닥 긁혀져 돋아난 뿌리가 머리엔 핀 종기다 설마 동자의 슬픈 전설을 다독이는 걸까 밤새 가려워 긁다가 먹이를 구하기보다 약을 찾아 메운 후 꽃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너를 대신할 수 없고 네가 나를 대신할 수 없어 혹한의 사연만큼 슬프지 않지만 붉은 종기가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꽃이라 여긴다면

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에 대해 김송포 자르라 무엇을 자르라는 것인지 당황스러운 명령에 주위를 힐끔거리며 몸을 유심히 본다 세상엔 잘라야 할 것들이 많다 아니 자르지 않아도 될 것들이 있지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어깨에 걸쳐있는 끈을 자르고. 팔뚝 부분의 ..

나의 시 쓰기. 릴레에 12 김송포 나의 시작법은 바슐라르의 연금술에서 시작되었다. 물과 공기와 불과 흙과 돌에서 어떻게 돌을 갈고 닦아야 하는 지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은유를 배웠고 어머니의 등에서 환유의 작법을 느꼈다. 시를 쓰기 위한 노력의 ..

-포항역에서 울리는 파도소리 기차는 바다로 난 길을 달린다 동해의 끝으로 달리던 열차가 포항역에서 멈춘다. 갓난아기를 안은 새댁이 포항역에서 내린다. 철길도 아니고 푸른 바다를 달리는 일이 두렵기만 하다. 갓 결혼한 새댁이 망망대해를 노 젓는 것처럼 불안하다. 낯선 항구에서 ..

조개술잔 /김송포 사금을 캐기위해 바다로 모여든다 바다밑의 산호는 수초처럼 넘실거리고 돌은 구멍을 메우기위해 굴러다닌다 사금파리를 캐는 겐지즈강의 사내는 한종지의 금가루로 식사를 해결한다 허리구부려 망 사이로 바다물 내리어 양식을 구하듯 조개술잔에 모래 걸러 바다를 ..

벚굴 김송포 벚굴 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남도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섬진강 따라 모래와 모래 틈 바위에서 핀다는 굴, 벚꽃 피는 그맘때만 딸 수 있다고 하여 벚굴이라고합니다 크기는 종지만 할까 밥그릇만 할까 석화도 그냥 석화가 아니지요 활짝 핀 처녀 가슴만 하더군요 누..

시 쓰는 사람들 김송포 오늘도 책상 앞에서 밖을 내다보니 거미줄에 꽃을 달고 동동 걸려 있는것처럼 자꾸 헛것이 보이네 가슴 안에 싹을 피우기 위해 오구리고 있네 피어나면 어떻게 날아오를 지 모르는 먹구름 날아가고 있네 이름도 없이 지고 말 꽃 공중에 등을 걸고 손님을 맞이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