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원고

릴레이 -나의 시 쓰기 / 김송포

songpo 2017. 12. 14. 05:48

 

나의 시 쓰기. 릴레에 12

 

김송포

 

 

나의 시작법은 바슐라르의 연금술에서 시작되었다. 물과 공기와 불과 흙과 돌에서 어떻게 돌을 갈고 닦아야 하는 지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영화의 한 장면에서 은유를 배웠고 어머니의 등에서 환유의 작법을 느꼈다. 시를 쓰기 위한 노력의 목적으로 나의 창작 노트에는 매일매일 일기 같은 형식으로 이 십년 동안 쌓여온 글이 내장 되어 있다

 

처음에 쓰던 글들을 읽어보면 막연하게 감정의 언어를 토해놓은 듯한 실타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포항에서 시인들과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시 연구반에서 바슐라르와 장자의 도덕경,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등 읽고,쓰고 합평하고 토론하였다. 매일매일 글은 창작 노트에 적혀져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뜨게 되면 책상에 앉았다. 쓰지 않으면 가시 돋듯 매일매일 기록하였다 읽지 않으면 견딜수 없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지 이십여년이 흐른다. 처음엔 나의 일상, 주변에 일어난 일상을 산문 형식으로 써서 마침내 동인지 형식의 산문집이 나왔다. 나의 글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아득한 꿈이 생각났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시집을 읽는 순간 감동이 일었다. 시를 공부하고 외우는 순간 광기가 전해져왔다. 여고시절은 삼 년동안 군인과 펜팔을 했다 얼굴 한번 보지 않고 글을 써서 서로 위안을 했던 학창시절의 필력은 그렇게 쌓여만 갔다

나의 창작 노트에 적힌 숫자를 보니 8071의 번호가 찍혀있다.

나의 결핍은 엄마와 아버지의 부재였다. 결혼하기 바로 전에 아버지를 보내고 결혼하고 아이 낳기 전에 어머니를 하늘로 보냈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라는 것을 해본 적 없이 혼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지 모른 체 끙끙대며 울면서 애에게 젖을 물렸다. 뜻하지 않게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이사하게 되어 낯선 도시의 생활은 더 막막하고 외로운 생활이었다.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갇혀있는 삶이 되었다 단독주택의 옥상은 울기 가장 적당한 곳이다. 밤하늘의 별도 달도 의지할 데 없는 나의 처지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대학 시절부터 써 내려간 나의 노트를 버린 것이 후회되었다. 언제 내가 다시 글을 쓸 일이 있겠나 했지만 나는 서점에서 김춘수 시론 책을 사서 공부했고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어린 아이 둘을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분주한 나날들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고 고학년이 되자 조금씩 시간이 났다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문학 아카데미에서 여러 장르의 분야를 공부하고 글을 썼다

누에가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듯이 복잡한 현실에 살면서 현실과 타협 없이 자신만이 갖는 정신의 액정을 뽑아서 한 편의 시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직시하는 두 개의 눈 말고 또 다른 눈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눈은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눈이다. 시를 쓰는 시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한다 눈이 보는 각도와 시선의 내용에 따라서 시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사물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갖고 쓰는 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지만 거칠고 황량한 마음으로 쓰는 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한없이 우울하고 비탄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내가 쓰는 일련의 시들은 한결같이 그런 면에서 정확한 현실감각이 밑바탕이 된 시들이다. 그림으로 치면 구상이나 비구상이 아니라 사실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감각적이고 다소 추상적인 눈으로 본 현실에 대해 나름대로 이미지를 상상력이 작용한 정물화처럼 그린 시들이 아니라 현실과 밀착돼 있으면서 거기에 깊은 애정을 담는 시들이다. 그러자면 사물을 대하는 판단이 정확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조금 앞서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의 시에는 추상적이면서 독자들이 웬만해서는 알아볼 수 없는 형이상학적이거나 현학적(炫學的)인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일상적인 생활에서 나오는 용어들이 시어로서 활약한다.

시는 매우 쉬운 것 같지만 이해하기가 비구상처럼 힘들고 그런가 하면 매우 어렵고 난해한 것 같지만 누구도 이해가 가능한 시를 쓴다. 그것은 쉬운 어휘를 조합해서 어렵게 만드는 것과 어려운 내용을 쉬운 어휘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스스로 다가가는 또 다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장점이 될 수가 있고 단점이 될 수가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모든 시 작업은 본론, 즉 총론(總論)을 향해 전진해가는 각론(各論)일는지도 모른다.

나의 시로써 쓰는 내용은 모두가 정직하고 솔직하면서 애정이 담겨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순리를 받아드린다. 내가 쓰는 시에 대한 위선과 허위의 모든 것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시인이 시처럼 살지 못하고 시처럼 솔직히 대화를 하지 못할 때 그것은 광대와 무슨 다를 것이 있겠는가

 

란 여러 가지 형태로 다가오는 기쁨과 감동이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혜택을 주는 빛이지만 그 빛이 다가와서 빛 이상의 또 다른 감동과 환희로 바뀐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빛이란 으레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늘 있었다는 생각이겠지만 나의 눈에는 빛이 다른 형태로 투영이 되는 것이다. 빛이란 눈에서 볼 때 생명 그 자체다. 빛이 있음으로써 시간이 존재하고 시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삶의 한순간을 지탱해주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작고한 이병주 선생은 "햇볕에 바래자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神話)가 된다." 고했다. 달빛과 태양 빛은 모두가 같은 빛에 속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달빛은 신화가 되고 태양 볕은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이 공간과 공간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 되지 않지만, 어둠과 빛, 절망과 희망, 그리고 삶과 죽음의 양극 된 공간으로 양분이 될 것이다. 바깥에 빛으로 매달린 공간에 더 큰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소나기 내린 오후의 무지갯빛처럼 찬란한 희망과 꿈의 실현이다.

 

어쭙잖은 나의 시작 노트가 부끄럽다. 나를 다 드러내고 민낯을 들고 나가야 하는 일처럼 조심스럽고 아찔하다. 그러나 한 겹 한 겹 벗어서 아름다운 누드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묘사로 보이기를 바라마지않는다

 

---2018.<시문학>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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