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에 대해
김송포
자르라
무엇을 자르라는 것인지 당황스러운 명령에 주위를 힐끔거리며 몸을 유심히 본다
세상엔 잘라야 할 것들이 많다 아니 자르지 않아도 될 것들이 있지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어깨에 걸쳐있는 끈을 자르고. 팔뚝 부분의 옷을 자르고.
중앙의 단추를 자르고. 치마 아랫단을 자른다
오욕을 탐냈던 허영을 자르면 뭐가 나오지
어디까지 그어야 선이고 도착이고 행위지
억압된 폭력을 감추고 살았던 것
희생을 감수하고 수치스러운지 판단하게 했던 것
자르지 않으면 불안하다
자르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나
분노를 표현해 보았나
사실이 없어질 수 있다고 믿었나
비굴함이 타인에게 잘릴 수 있어
잘라야만 할 그녀의 머리칼이 있어서 윤기 나는 관계,
가위로 다스리려 했던 절규를
현장에서 몸으로 보여줘야 한단 말이지
감추어져 있어야 했는데 드러나고 만 숲에 대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컷!
웹진 『시인광장』 2018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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