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악양'

songpo 2016. 8. 15. 07:33

악양

 

김송포

 

악양 야걍 아가걍

하동, 악양이라는 곳에 발을 디뎠다

누가 서러워 아걍아걍 울어대는지

무슨 설움 지키려 안간힘 썼는지

대봉이 방바닥까지 허리를 휘고 있는 악양

어미 등에 업혀 밖으로 나오고 싶어 안달하는

서너 살배기 아기처럼

아걍 아걍

코가 땅에 닿도록 고개 내밀어 머리를 떨구는 악양

그래 아걍에 어미와 아기가 있었구나

그 옛날,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선반에 올려놓은 대봉을 아기에게 주려고

발판 딛고 꺼내다가

미끄러져 상처가 생긴 어미가 있다

칭얼거리던 나 때문에 생긴 상처다

대봉을 먹을 때마다 나는 흉터를 우물거렸다

아강 아걍

땅에 코를 빠뜨리고 우는 아이가 악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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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이 흘러내리는 섬진강변 악양에, 가을이면 빨간 대봉이 늘어지도록 열린다. 시인은 악양을 “야걍 아가걍”으로 환치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지면 관계상 생략된 부분에는 아가에게 대봉을 주려다 넘어져 상처를 입은 어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그 흉터를 우물거리며 시인은 “아걍 아걍” 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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