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암전의 다음 장면 /김송포

songpo 2017. 7. 22. 12:05

 

암전의 다음 장면

 

김송포

 

 

안개의 나라에 들어가서 쉬고왔어요

안개에 젖은 분위기라지만 운무도 해무도 갑갑한 공간일 뿐이예요

 

점점이 박힌 먼지에 실핏줄이 뭉쳐 떠다니면서

앞에 있는 얼굴을 가로막아요

유일한 희망이자 대지의 구원이거든요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흑으로 들어가요

암막의 구멍으로 밀어 넣어요

말소리 들어도 듣는 것이 아니고

눈을 떠도 볼 수 없는 당신,

수술대 위에서 환하게 웃는 당신이 보여요

 

유리체를 걷어내는 일이란 보이지 않는 점 하나까지 세밀하게 보여주는 특실이에요

 

거짓을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창이 되고

까만 눈동자는 커튼의 그늘에서 도드라지지만

과거를 되살리는 거룩한 당신이 보여요

 

먼 나라에 다녀 온 후로

확연히 빛나는 당신이 뒤를 비추고 있네요

 

 

 

 

 

 

 

질문에 답이 없어야 하는 것들/ 김송포

 

 

무슨 ? 하고 물었을 때 무슨 이유였지. 무슨 이유가 있어야 했나.

물어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간격이 멀었나

 

의문에 물음표를 만들어 고민을 넘어 처음 시작했을 때 소리는 북에 가까웠고

중간 즈음 왔을 때 별들을 불러 모았고 끄트머리쯤 왔을 때 돌로 굳어 있어

 

밤마다 언어로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하더니 정작 그림을 그리면 찢어버리라고 했어

이유가 없을 땐 흐트러지지 않았고 진실이 되었지만, 이유가 있는 것은 정리해야겠다는 말,

틈 사이로 바라본 후의 모습이 사라져

 

한 계절은 참으로 길고 멀지. 말의 잔치에 초대되어 파티복을 입고 춤을 추지

굽 높은 구두를 벗고 올린 머리를 풀고, 꽂았던 핀을 빼고, 잠옷으로 갈아입어.

연못에 던지며 놀았던 양면의 동전 놀이를 멈춰

 

무슨 일이지. 수많은 물음표에 수레를 끌고 왔던 말들의 줄다리기,

무슨 일이라는 단어에 방울방울 맺힌 입들이 웃고 있어

 

무슨 일 없어

 

 

  -2017.<예술가>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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