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사흘 /박지웅

songpo 2017. 12. 17. 14:59

사흘


박지웅



문상객 사이에 사흘이 앉아 있다
누구도 고인과의 관계를 묻지 않는다
누구 피붙이 살붙이 같은 사흘이

있는 듯 없는 듯 떨어져 있다
눈코입귀가 눌린 사람들이
거울에 납작하게 붙어 편육을 먹는다
사흘이 빈소 돌며 잔을 채운다
국과 밥을 받아 놓고 먹는 듯 마는 듯
상주가 사흘을 붙잡고 흐느낀다
사흘은 가만히 사흘 밤낮을 안아 준다
죽은 뒤에 생기는 사흘이라는 품
그 사흘 지나 종이신 신고
불 속으로 걸어가는 사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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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殯所)'는 염을 하거나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을 뜻한다. 그런데 나는 좀 엉뚱하겠지만 가끔 그곳을 '비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호상이어서 문상객들이 북적이는 빈소라도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든다. 왜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죽음은 산 사람들에겐 영원히 메꿀 수 없는 공백이지 않은가. "죽은 뒤에 생기는 사흘이라는 품"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오로지 텅 빈 심연 그 자체다. 그래서 죽은 자를, 상주를, "피붙이 살붙이"들을, 문상객들을 그리고 그들이 잠시 모여 머문 "사흘 밤낮을 안아" 주는 주체는 "사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흘 동안 우리는 이 세상에서가 아닌 듯 울고 껴안고 묵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



이 ‘사흘’을 무어라 부를까. 문상객들 틈에 앉아 술을 따르고 상주를 안아주는 이, 이상한 사흘을…. 사흘은 임종에서 화장까지의 시간을 육화한, 혼령의 은유다. 그것은 ‘피붙이 살붙이’가 못 되고, 겨우 그 비슷한 것이 되어 있다. 고인은 자신이 넋인 줄도 모르고 마지막 이승 잔치에서 홀로 바쁘다. 장례의 시간에 남은 이도 떠나는 이도 회한과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몸 없는 사람이 슬픈 몸들을 아깝게 어루만지는 걸 시인의 눈이 안타깝게 바라본다.

이영광·(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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