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김소연의 「과수원」 감상 / 손택수

songpo 2019. 10. 2. 20:01

김소연의 과수원감상 / 손택수

 

 

과수원

 

                            사과를 연구하는 자는 사과의 미래를 굳게 믿는다

                                   사과의 가능성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걸 무지로 파악한다

 

   김소연

 

사과를 너무 많이 들어서

사과를 모르게 되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사과의 허구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이해의 허구도 사과해야 할 것 같다

사과를 구하면서

사과로부터 하염없이 하염없이 멀어져가는 사람들

화가의 정물로 사랑받아온 사과들

건강미 넘치는 사내들의 앞니 자국이 찍힌 사과들

트럭을 타고 달리는 사과 더미들

우당탕탕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새빨간 사과들

사과가 하나둘씩 멈추면

허리를 굽혀 멍든 사과를 주워드는 사람들

사과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니

벌써 용서받은 것 같다

용서의 허구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집 i에게(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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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는 모순의 과일이다. 인간의 입맛에 봉사하면서도 삼키면 복통을 일으키는 천연 청산가리를 씨앗 속에 품고 있는 과육. 눈 덮인 천산 산맥 어디엔가 있다는 세상 모든 사과들의 고향을 사과는 잊지 않았나 보다. 따가운 산정에서 서늘한 계곡 속까지 깎아지른 온도의 낙차 속에 꿀을 쟁이는 야생을 끝끝내 놓지 않고 지구를 여행하고 있나 보다.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사과의 디아스포라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원의 향수 같은 것이 있다. 길들이면 길들이는 대로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앙큼한 모반의 씨앗이 흑점처럼 사과를 폭발케 한다. 이미 멸종해 버린 누군가의 식성이 씨앗의 심연 어디엔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 인간인 나와는 다른 입맛을 가진 누군가의 취향이 사과를 유구하게 한다. 뻣센 성질을 다스리겠다고 가지마다 물병을 매달아 놓은 과수원, 줄 끊어지면 따귀라도 한 대 후려칠 것 같은 사과는 여전히 미래의 과일이다. 사과가 익는 계절이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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