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학번
류 근
재수를 하고서야 간신히 대학에 입학한 아들
아침마다 갈 곳이 없다
학교는 분명 거기쯤 있을 텐데
갈 데가 없다
입학식에 입으려고 작년부터 준비해 둔 양복
요즘 누가 입학식에 그런 걸 입느냐며
온갖 놀림에도 아랑곳없이 다려두었던 그 양복
옷장에서 한 번도 나온 적 없다
입학식도 없이 개강 첫날의 촌스러움도 없이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는 동안
학교 한 번 못 가보고도 대학생은 대학생
모니터 속 교수는 아들의 얼굴을 모르고
아들은 학교 가는 버스 노선을 모르고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들의 정체를 모르고
학교는 언제 문이 열릴지 모르고
바이러스는 언제 사람을 지나칠지 모르고
모르고 모르고 온통 모르고
이 자욱한 몽롱의 담장 너머 캠퍼스엔 꽃이 피고
여전히 등록금 고지서는 펄럭이고
아들은 대학 건너의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아침마다 갈 곳 없는 대학생 아들 앞에서
엉거주춤 시선을 잃는 나에게
확진자 숫자는 괜히 화를 내는 늙은 교수처럼
중얼중얼 자꾸만 무언가를 물어댄다
⸺계간 《미네르바》 202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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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 / 1966년 경북 문경 출생.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상처적 체질』 『어떻게든 이별』,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싸나희 순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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