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김송포 / 팽이

songpo 2021. 6. 13. 16:40

팽이 /김송포

 



 어지러운 순간이 있어 다리를 모으고 정지해 있을 때 동그란 몸이라고 했지 달이 돌고 그림자 돌고 돌아가야 웃는 일들이 생기지 동네 한 바퀴 돌고 있을 즈음 렌즈에 잡힌 남녀의 그림자를 보았다

  돌고 도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정자 위의 난간에서 전철 개찰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헤어지는 순간까지 손을 돌리고 허리 돌리고 입을 돌리고 지구를 돌리는 일들이 있다 길에서 숲에서 공원에서 달빛은 입술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돌리고 다리를 돌려야 이루어지는 찰나가 팽이의 모습으로 있다

  오랜만에 너의 둥근 몸을 밤새 돌리며 깔깔거린다 뾰족한 발가락을 올리고 종종거리며 발레 하는 비비안의 다리처럼 길어지지만 멈출까 봐 붙었다 떨어졌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서 돈다

  백 년 만에 잡아 본 너를 팔로 돌려야 한다는 사실이 서러워 두드리면서 가까워져야 하는 애인 사이가 멀기만 하구나 팽이는 팽이대로 너는 너대로 얼마만큼 돌려야 정수리에 닿을 수 있을까 닿을락 말락 너의 밑을 굴리는 한 밤의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