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김송포 시인-모던포엠 포커스

songpo 2022. 1. 17. 21:13

 

 

-신작시

 

즉석 질문에 즐거운 락

                -조영남 집에서 인터뷰 중 -

 

예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카데믹한 질문이오 눈을 치켜뜨며 붕어라고 생각해 이덕화가 촬영만 끝나면 가방 메고 가길래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낚시를 하러 간다고 하더군 낚시꾼이 낚시 할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오 붕어요 붕어는 잡았다가 놓아준다고 합디다 그저 좋아서 하는 거죠 나도 좋아서 하는 거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제일 재미있기 때문이오 당신들과 얘기 나눌 때 그림을 그려도 이해해줄 수 있겠죠 나는 잠시도 손을 놓고 싶지 않소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오 나는 이상을 이상 이상이었다고 소개하고 싶소 이상의 소설 날개 알지 그거 하나면 충분해 그렸다가 버려두고 다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그리는 그리고 버리는 버리는  

 

 또 질문 있어요 혹시 사후에 이 많은 그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현재 그리는 것도 버거운데 죽은 후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나의 그림으로 영생을 바라지 않소 그저 매일 좋아서 색칠하고 붙이고 오리고 덧칠하고 붕어처럼 바다에 놓아주고 잡고 놓아주고 손가락 끝이 즐거울 락樂

 

 

 

밤에 피어나는 금

 

 

 밤은 피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는 것이다 금은 밤에 빛난다 금동여래좌상은 포를 두르고 손을 얹고 이마에 주름을 새기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금으로 전신을 칠한 좌상은 치밀하다 뿔이 없다 부드럽다 안정된 좌장이다

 

 금에 관심이 없는 나는 서랍에 박혀 있을 어머니의 반지가 눈에 비친다 좌상의 노란 빛이 궁금한 이유는, 금장으로 된 허리띠를 졸라매어도 심장의 색은 노랗게 보인다 감사가 넘치는 강물이다 밤에 만날 사람 없어도 빛나는 사람이 꿈속에서 어룽거린다 

 

당신의 뼈가 야릇해서 만지고 싶다만

밤에 볼 수 있다는 금지된 게임을 풀고 싶다만

 

-대표시

사람이라는 말

 

 

소록도에서

사람이라는 말이 하고 싶어졌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이 땅에 살아 있다

바닥에 누이고 사람 아닌 도구처럼 실험한다

유령같이 사용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이토록 사람이라는 말이 절실했던 순간

사람으로 태어나서 우쭐거리며 돌아다닌 자국들

병을 옮긴다고 잘라내야 했던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병을 가진 사람한테서 제로라는 것 자체가 사람이 아니다

방에 쇠창살 하나만 내어준 채 햇빛을 보지 말라 가두어 놓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실험으로 유리 안에 넣어둔 사실을 본다

내 안의 살점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태어날 자유가 있을 뿐

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이 사랑보다 더 무서운 줄

 

사람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이 변형된 것

내가 가진 병도 네가 가진 병도 사람이니까 유한한 것

 

사람이 사람을 사람하는 것이 사랑이라 벌하고

 

 

원피스에 대한 기다란 생각

 

 

가끔 아니 자주 기다란 생각을 해

 

마네킹에 옷을 입혀 보렴 

허리 잘록 들어간 옷에 시선을 고정해 

44 싸이즈 원피스를 꼭 입고 말 거야

미스몰에서 옷 두 벌을 샀지

"뜨악~"   

 

롱과 미니의 차이를 인정해 

착각할 수 있어

확대경 속으로 빠져들더니

지금을 잊고 여름을 잊고 젊음을 잊고

실수를 반복하는 사건을 저장해

 

실제를 잊어야 해 

관념을 지워야 해

영롱한 육각형의 별을 보는 즐거움을 상상해

 

기다란 원피스를

~하게 입고 

로망 하는 그날까지 

롤랑 머물러 보려고요 

 

 

의 초대

 

 

초성은 같았으나 중성에서 착오가 있었다

 

의 차이에 객석의 관중은 웃음을 던졌다

 

피아노를 치는 사회자는

모시고 싶지 않은 첼로 연주자 소개에 

그 연주자는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자리에서 심호흡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자는

의 중성에 귀를 기울이며

모시기 쉽지 않은 초대라는 말에 현을 키기 시작했다

 

피아노는 첼로를 모시고 싶었고 

첼로는 바이올린을 초대하고 웃었다

 

피아노와 첼로와 바이올린의 삼중주

의 초대가 감정의 벽을 횡단하듯 부드럽게 넘어간다

피아졸라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유기체 중 

사랑, 슬픔,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중 망각은 더 아름다운 현이라고 말했지

 

모시고 싶지 않은모시기 쉽지 않은

초대가 박수를 만들어낸 리베로 탱고의 칼날

 

 

추사 김정희

 

 

완전이야 완성이야 완결이야

 

소나무를 닮은 푸름을 찾아 추사관 앞에 심었다

잣나무를 닮은 곧음을 구해 당신에게 심었다

 

사랑이 칼로 붓을 휘휘 젓던 가을처럼 구부린다

 

당신이 힘을 주어 눈을 부라린 일이나

고개 숙여 콧대를 세운 일이나

빛나던 글씨의 결자처럼 승리를 장담하던 일이나

매사 힘을 강조하던 칼의 주인공은

하얀 머리 흩날리며 나에게로 온다

 

손끝에서 빠져나가는 탄력은 뭐지

기름을 부어야 한다

정전을 막아야 한다

시동을 걸어야 한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위용을 가슴에 심어야

위기가 살아난다

 

추사 추사

가을에 죽을 힘 다해

왼결문이 되도록 도와주셔야 해요

 

완당 완당

음양의 조화를 멋지게 해야

둘이 살아날 수 있어요

 

 

채움은 있다, 없다

 

 

옷장에서 색깔을 뒤적였지요

한때 핑크 핑크 핑크를 외치며 발랄한 외출을 꿈꾸며 옷장을 가득 채웠고요

부끄러움도 있었을 텐데 그 당시엔 모른다는 거예요

 

블랙 블랙 블랙에 열광한 적 있지요

감추기에 안성맞춤,

가슴이며 엉덩이며 감싸기에 충분했을 거예요

 

어느 날, 네이비에 초점을 두고 부르짖어요

적당히 가리면서 감정을 죽여 최적의 색을 고르다 보니 채워져 있지 뭐예요

 

온통 옷걸이에 네이비 네이비 네이비

일곱 색깔 무지개 중 네이비를 선택 할래요

이름도 성도 묻지 말고 네이비라고 불러줘요

간편한 채움이 여기 있어요

당신은 어떻게 부를까요

옐로우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방을 들여다보며 '존재하는 것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냐' '햄릿'을 읽었지 뭐예요 '비워야 하는 것이냐 채워야 하는 것이나 결정이 문제로다'

불안의 채움을 날개에서 찾은 것 눈치채셨나요

 

 

첼로가 된 백남준

 

 

 

첼로는 고통의 이음새처럼 떨린다 부드러우나 부족한 듯 어색하게 첼로를 켜다가 뒤를 본다 문득 생각난 듯 현을 다시 흔든다 산만한 주위가 첼리스트를 흔들어 깨운다 불안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켜자 왼쪽 가슴이 비어있다 오른손이 떨리며 어긋난다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가 있다 그녀의 가슴에 남자가 살포시 안기었다 남자의 등을 현으로 긁어대기 시작한다 남자의 등은 핏자국이 선명하다 한 몸이 되어간다 첼로의 소리는 겨우 물결을 찾아간다 물결의 소리는 푸른 녹음이다 문장의 고동을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다 남자의 등은 첼로의 현이 되기 위해 몸을 더 밀착시켜야 했다 그녀에게 안겨 몸을 대준 첼로의 등에서 말을 타고 광야를 젓듯 광시곡이 흘러나온다 샬럿 무어먼의 오른손이 비로소 현을 태운다 백남준을 켠다

 

 

바코드와 로봇의 사이를 관계한다

 

 

나의 손목엔 바코드가 찍혀있다

서로 눈치를 살피는 관계가 되었다

 

어떤 문제를 주어도 처리가 가능한지 물었다스스로 환경을 정리해서 선별한다고 했다나의 몸에 숨어 생각을 캡처한다고 했다

설마밖에서 몰래 먹은 소시지를 기억하겠어

그 광경을 보던 로봇은 나의 배고픔을 지켜보다가

상한 소시지야!

몇 초도 안 되어 뱉어내라고 했다

그럼너의 지능이 문어 다리란 말이지

기능을 춤으로 보여줄래감정 없는 너의 표정을 라면으로 떠올릴 게

너를 실험하고자 따돌리고 도망을 갔어

쫓아갈 수 있을까

머리에 상자를 두른 채 불을 켜고 따라다녔다

나의 감정을 이해했을까생각을 대신 인식한다고 했다

끝까지 꼬리를 찾아

상자 안에 담긴 감정을 전달해주었다

 

들키고 싶지 않아

나는 나를 숨기고 싶어

그만 잊어

 

심장에 박힌 바코드를 떼어냈다

 

에러가 뜬 당신,

이리저리 헤맨 우리는 서로의 미아

 

 

스멀스멀 옮겨 다니는 무늬

 

 

겨울은 결코 봄을 가두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무늬는 잘못이 없다

창살을 만들지 않았는데 스스로 갇히어 신음하고 있다

무늬가 무성하여 소나무 숲에 푸름을 찾으러 가야 한다

 

열려있는 공기는 적이다 마스크는 최대의 방어다

 

입을 봉하고 코를 킁킁거렸다

파괴력을 지닌 핵도 아니고 스며드는 저 무늬의 정체를 막을 수 없으니

박쥐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붙는다는 것인가

 

한 때 이리저리 간을 보며 붙어 다닌 적이 있었다

 

사람한테 붙으면 돈을 벌려나

책과 붙어있으면 시인이 되려나

가로등과 사귀면 골목이 열리려나

꽃이 많으면 새가 모여드려나

 

수많은 날갯죽지를 펼쳐가며 벽에 붙어 다닌 흔적을 알고 있을까

너의 탓이 아니고 나의 탓도 아닌 0의 전쟁은

 

무한

 

골방

 

 

-2022.4월호<모던포엠 포커스 김송포 시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