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버리고
김송포
이사 할 무렵 줄줄 비닐에서 새어 나온 것이 있다. 소금이다. 이걸 어쩌나 신혼이라 김치도 잘 담아 먹지 않고 양념도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버려야겠다. 귀퉁이에서 비닐봉지가 또 나온다. 집에 소금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예전 아버지가 위도에 계실 때 젓갈과 소금을 잔뜩 보내온 것이다. 먹지도 않은 걸 보내오셨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먼지도 아끼고 아낀 분이었다. 동전 십 원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만 원만 생겨도 은행으로 달려가셨다. 사춘기 땐 은행을 자주 가시는 모습을 보면 창피하고 돈 세는 모습만 봐도 고개 돌려 외면했다.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같이 짜게 굴지 마라. 동네 인심 잃고 친척들 다 떨어진다. 자기 옷 하나 벌벌 떨면서 와이셔츠 깃이 다 헤질 때까지 못 사게 했던 분이다. 그래도 너희 오 남매 대학까지 다 가르치며 교육열은 대단하시던 분이다. 아파도 감기약 짖지 않고 버티신 분이다. 세상에 너희 아버지같이 짠 양반은 왕소금이 다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십 년 후 어머니는 김치 담으러 오셨다, 그 소금 가져와라, 버렸는데요, 왜 버려, 물이 줄줄 새서 못 쓰는 것인 줄 알고, 아이고 어쩐다냐, 그것은 짠물이 다 빠지고 정제된 소금인 거야, 그걸 버리다니 아까워라, 소금이 뭔지도 모르고 딸년을 대학까지 가르쳤다니, 지하에서 소금물 아깝다고 받아먹고 계시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시집이라고 보내서 김치 담아 먹으라고 백 년 전에 바다를 짜서 보내온 것을 버리다니,
아버지도 버리고 무덤도 버리고 기억도 버리고 소금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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