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정희성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어디 가 조용히
혼자 좀 있다 오고 싶어서
배낭 메고 나서는데 집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생태학교에 간다고
생태는 무슨 생태?
늙은이는 어디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앉아 있는 게 생태라고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고
봄이 영영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그런다고는 못하고
———
* 이상국의 시 「그늘」의 첫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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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한 대목의 일상입니다. 봄날은 만물이 솟으니까 우리 몸도 솟습니다. 나이가 어떻든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은 더욱 반짝이지만 노년의 웃음도 모처럼 윤이 납니다. 그리하여 어디 가서 몸도 마음도 다스려보고자 합니다. 봄 꽃, 봄바람으로 씻어보고자 몰래 나서봅니다. 어디 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종아리’라도 훔쳐보고 해야 합니다. 그건 시심(詩心)입니다. 누구나 있는 시심입니다. 배낭 매고 나서는 마나님은 속도 모르고 근심합니다. 즐거운 ‘심란’을 근심합니다. 이러한 심란도 그러나 더 나이가 차면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봄이 영영 올 것 같지 않아’ 그런다고 말하지 못하고 곤란합니다. 시인이라 그런다고 말하지 못하고 곤란합니다. 허나 독자는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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