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전봉건

songpo 2015. 11. 15. 21:53

전봉건의 「고전적인 속삭임의 꽃 1」평설/ 박두진

고전적(古典的)인 속삭임의 꽃 1

전봉건

나와

당신의 손은

어디서고 만난다.

그렇게

당신이

원한다면,

어디고 없이

나는 내버려져 있는

이끼이고

돌멩이기도 하다.

천년을——.

그렇다,

당신의 손이

나에게 와 닿으면

오 천년도 일순이다.

벌써

당신은

나의 손아귀에 있다.

경주(慶州)의 어느 밭고랑 사이에서도,

당신은

어둠을 사르는 크낙한 번갯불이 된다

영원무변(永遠無變)한, 하늘의 푸름의 원소가 된다.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을 끼고 보듬고 언제나 언제까지나 흘러내리는 풍요한 강이 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눈으로 넘쳐나는 뜨거운 것이 된다.

열의, 아니 백의, 천의 태양이 아로새겨진 이슬방울들이 되어 당신은 그러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의 전신전령(全身全靈)에 이미 일제히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끝이 없는 젊음이란 것을 당신은 보았는가.

그 때의 당신은 뿌리에 달린 잎사귀,

잎사귀에 달린

열매, 열매에 달린 뿌리다.

이윽고 당신이 나의 손아귀에서,

어디고 없이 천년도 내버려질 이끼와 돌멩이 속에서, 천년을 울려 날 맑은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되는 것은…….

내가

당신의,

인간의,

찬란한 삶의 기쁨인 까닭이다.

천년도 먼 전날에 한 사람의 손이

어둠을 죽이고 죽음을 죽인 손자국.

나는 한 돌멩이에 새겨진

그 손자국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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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 것이 없는 활달하고 건강한 시. 오래고 싱싱한 푸른 거목이 하늘의 무진한 푸르름을 떠받치고 서서, 젊은 생명의 음악을 교향해 내는 것과 같다. 여유가 있는 유동성, 풍부한 표현이 잘 계산된 구성의 밑받침으로 견고하게 결체(結體)되어 있어 파악력도 강하다.

내가/ 당신의/ 인간의/ 찬란한 삶의 기쁨인 까닭이다./ 천년도 먼 전날에 한 사람의 손이/ 어둠을 죽이고 죽음을 죽인 손자국./ 나는 한 돌멩이에 새겨진/ 그 손자국이기도 한 것이다./ 의 ‘당신’의 의미는 아직도 관념에 머물러 있어 그 실체를 잘 모르겠으나, 그 ‘당신’은 이 시에 있어서는 가장 중심 되는 주제 대상이다. 한 시인이 그의 모든 것을 몰아넣어 한 인격화된 단일한 대상에게 그 대화를 집중할 때, 그 관념화된 대상의 실체의 해명은 곧 그 작업 그 시 사상적 전개의 구체성을 말하게 된다.

다만 첫머리 시행의 토막 토막한 배열은 가장 중후한 중심 부분을 위해서의 역학적 대비를 노렸다 하더라도, 너무 호사취미적(好事趣味的)이고 무리가 있다.

—박두진 저『한국현대시론』중「오늘의 한국시」1970년. 330쪽~332쪽.

박두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