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봄 봄 봄 /김송포

songpo 2015. 12. 31. 20:51

 

봄봄봄


창문 틈으로 밀고 온 햇살 아저씨 어서 오세요
지금부터 겨울 이불 걷어 내 속의 먼지 털어 보자고요
널브러진 쿠션에 갇혀있는 덩어리도 벗겨 주시고요
허리 꼬부리고 앉아 읽어가는 책의 거미줄은 잠시 놓아두시어요

바닥 사이 찌든 때 붙어 있는 거만 딱지 긁으셨나요 
허리 잘록 들어간 옷으로 마음 다지고 싶은 데 괜찮을까요
장식처럼 달고 다닌 거만한 바바리는 새로운 유행으로 고쳐 주세요
발밑에 기어 다니는 벌레의 고민을 잡아 주시고요
스팀청소기로 타오르는 간도 식혀 주세요
골방에서 씨름한 퍼즐도 다 허영이거든요
당신이 오실 줄 알고
홑청 껍데기 푹 삶아 놓았으니 봄볕에 세균까지 말려 주실 거죠
아카시아 바람 내려오거들랑 보리밭으로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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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본적 


경남 하동 악양면 축지리 아미산 중턱에

육백 년 된 소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숨기고 장승처럼 서 있네
무슨 억장이 무너지길래 본적을 감추고 대지를 향해 부르짖을까
고향은 어디에 있지
나의 씨를 찾지 마 들추고 싶지 않은 계보도 있는 거야
조상이 누구냐고 거슬러 올라가지 마

내가 되고 싶은 거야
자수성가해서 이만큼 굳건하게 서 있으면 되었지

서자든 사생아든 다리 밑에서 주운 아이든 밑을 보려고 하지 마
이 나무 저 나무 그 뿌리 파 보면 잘 난 것 없고 못날 것도 없어
너의 피라고 하얗기만 할 것 같니 나의 피라고 검을 것 같니
혼자 이만큼 이루었으면 누가 함부로 짓밟겠니
바위 밑의 누런 족보를 누가 들추어내겠니
아파서 아파서
커다란 돌로 눌러 놓으면 비밀이 새지 않을 것 같았지
뿌리를 보고 싶거든 내 목이나 만지다 가려무나
관능적인 목덜미라고
검은 구름도 한 번씩 굽어보고 간다더라

 

---미래시학.2016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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