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의 선택이 질서라고요
김송포
단추의 선택이 질서라고요
옷을 입으려다 단추 구멍을 보았어
단단하게 몇 초의 시간을 여며야 하는지
순간 몇 개를 풀어야 열리는지
배열은 여러 각도로 분열을 하더군
언제부터인지 단추 있는 옷을 선호하게 되더군
자유를 잡아주는 단단함이 있고
어깨를 세워 사람을 가늠하게 되고
이중의 질서가 생기더군
언제부터인지 옷에 단추가 몇 개 있는지 확인부터 했어
급할 땐 단추보다 손쉬운 지퍼를 생각하다가
단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관음이 생기더군
단추는 느리게 한 박자 쉬어주는 흐름,
구멍을 잠가본 사람은 오묘한 구속이 좋아
앗,
단추가 떨어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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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미안해야 할 등이 있다
오르막을 오르다가 인력거에 의지했다
그의 눈빛은 흐리다
호랑이가 협곡에서 달릴 정도로 계단은 순탄하지 않았어
외길에서 마주친 그가 헉헉거린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몸에 힘을 빼고 못 본 척 설산을 바라보며 안간힘 쓰다가
스물두어 살 젊은 남자가 나를 태우고 계단을 오를 때
몸을 공중에 띄워 가벼운 척하고 쉴 때마다 땀에 젖은 등을 본다
내린다고 할까
잔인한 놀음을 해서 미안할 즈음 그는 잠시 쉰다고 했다
미안한 것이 어디 이번뿐일까
혼자 떠나는 바람이 너무 많아서
사랑받은 만큼 주지 않아서
ego가 강해서
야망을 위한 도구로 재료 삼아서 반성하게 만드는
등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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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야 했던 순간
가장 못생긴 발을 맡기고 시름시름 잠이 들었다
가까운 사람도 아닌데
기름을 발라 손으로 발을 지압 한다
몇 살이에요?
손가락으로 두 개와 셋을 펼쳐 보인다
발을 두드리며 팔뚝으로 안마해준 너를 보며
잠이 든 척, 눈을 감았다
괜찮아요?
내가 누구의 발을 만져준 적 있던가
죽을 때까지 한 번만이라도 당신의 발을 주무를 수 있을까
말이 통하지 않아도 씻어줄 수 있다면
14살 때 뜨거운 밥을 지어 도시락을 학교로 가져다준 언니가 있었다
제주도로 시집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죽기 전에 꼭 만나서 그녀의 발을 씻어 주고 싶다
아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발을 내미는 내가 눈을 감아야 하는 이유다
----[See詩]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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