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이성복 (1952~ )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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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진 갯벌에는 게들이 살고, 또 밀물이 올라오면 서해는 질퍽하고 평평한 갯벌에 몸을 뒤척인다. 서해가 내 마음에도 펼쳐져 있다. 늘 파도가 치는, 붉은 낙조가 아름다운, 까마득한 서해 바다가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곳 서해에 끝내 가지는 않겠노라고 말한다. 혹여 그곳에 사랑하는 당신이 계실지 모르는 까닭에. 내가 다 가보면 당신이 계실 곳이 줄어들 것이기에. 당신에게도 당신이 계실 자리와 시간이 있어야 하기에. 당신에게도 어떤 여지가 필요하기에.
우리 마음속에는 파도치는 바다가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서해 바다가 있다. 시인은 이 감정을 시 ‘거울’에서 “하루종일 나는 당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은 끝이 있습니까”라고 썼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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