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개는 어디에 있나/ 김기택

songpo 2018. 10. 9. 10:17


 

 

 개는 어디에 있나

 

 

 

아침에 들렸던 개 짖는 소리가

밤 깊은 지금까지 들린다

 

아파트 단지 모든 길과 계단을

숨도 안 쉬고 내달릴 것 같은 힘으로

종일 안 먹고 안 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슬픔으로

울음을 가둔 벽을 들이받고 있다

 

아파트 창문은 촘촘하고 다닥다닥해서

그 창문이 그 창문 같아서

어저께도 그저께도 그끄저께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주민들 같아서

울음이 귓구멍마다 다 돌아다녀도

개는 들키지 않는다

 

창문은 많아도 사람은 안 보이는 곳

잊어버린 도어록 번호 같은 벽이

사람들을 꼭꼭 숨기고 열어주지 않는 곳

 

짖어대는 개는 어느 집에도 없고

아무리 찾아도 개 주인은 없고

짖는 소리만 혼자 이 집에서 뛰쳐나와

저 집에서 부딪치고 있다

 

벽 안에 숨어 있던 희고 궁금한 얼굴들이

베란다에 나와 갸웃거리는데

어디서 삼삼오오가 나타나 수군거리는데

흥분한 목소리는 경비와 다투는데

 

울음소리만 혼자 미쳐 날뛰게 놔두고

아파트 모든 벽들이 대신 울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사람 냄새가 난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없는데 사람 냄새가 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운 냄새가 난다

주위를 한참 살펴보니

 

구멍이 많은 하수도 맨홀이 있다

무언가 뚱뚱하게 부풀고 있는 꺼먼 비닐봉지가 있다

둥글게 모여 거뭇하게 말라가는 토사물이 있다

 

다 보인다 아무리 꼭꼭 숨어도 머리카락이

다 보인다 안 보는 척 내리깐 눈도 뒤통수도 내장도

다 보인다 들키고 싶어 안달하는 몸짓과 눈빛과 뜨거운 신음도

다 보인다 몸이 다 사라져버렸는데도

 

과도하게 흥분한 상태임이 틀림없다

뚜껑 열린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할 말들이 내장을 닦달하며 끓고 있는 게 확실하다

제 기운을 다해 눈알에 초점을 모으고 있을 게 뻔하다

 

막무가내로 아아

기체의 손가락들이 긴 손톱으로 허공을 북북 긁고 있다

안간힘과 발버둥이 냄새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다

끝내 참지 못해 내 코는 재채기를 터뜨린다

튀어나온 침방울들이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싱그럽게 퍼진다

하수도 위에 검은 비닐봉지와 토사물 위에

 

누구인가 저 냄새 속에 제 존재를 남김없이 흘리고 간 자는

누구인가 바지를 잡고 울며 매달리는 냄새를 냉정하게 뿌리치고 홀로 떠난 자는

누구인가 이미 떠나버렸는데도 아직 떠나지 않은 자는

누구인가 자신을 다 버리고도 여기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자는

누구인가 냄새 속에서 부글부글 익어가면서 자신을 완성하고 있는 자는

 

 

             ⸺시집 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2018. 8)에서

------------

김기택 /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1989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갈라진다 갈라진다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시 너머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와 물고기 /김경수  (0) 2018.10.30
1914 년 /김행숙  (0) 2018.10.09
서해/이성복  (0) 2018.09.29
낫/김기택  (0) 2018.09.29
멸치처럼/김명인  (0) 2018.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