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멀스멀 옮겨 다니는 무늬
김송포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손은 잘못이 없다 창살을 만들지 않음에도 신음하고 있다
무늬가 무성하지만 십리 길 숲에 금모래를 발견하듯 동선을 찾아야 해
열려있는 공기는 적이다
마스크는 최대의 방어다
입을 봉하고 코를 봉하고
소리 없이 스며드는 저 무늬의 정체
박쥐는 어디 가서 어떻게 붙는다는 것인가
한 때 이리저리 공기를 훔치며 붙어 다닌 적이 있다
사람과 있으면 포옹을 하거나
책과 있으면 사람이 되거나
가로등과 사귀면 덜 외롭거나
꽃이 많으면 다람쥐가 오고가거나
날갯죽지를 펼쳐가며 벽에 붙어 다닌 흔적을 찾아야 해
너의 탓이 아니고 나의 탓도 아닌 바이러스 평화,
다시
집으로 들어가 내면을 만들고 단단한 몸을 만들어
하얀 가운의 손이 승리하는 것을 봐야 해
-코로나 관련한 전자책 발간 , 디지북스 2020.7월 -33명의 시인들이 코로나를 쓰다
시작노트 :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동침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시간은 순간이고 그 순간에 적절한 선택을 하며 부드럽게 넘어갔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평화의 일상이 이렇게 간절한 적이 있던가 코로나가 주는 평범한 하루를 숨을 쉬며 걸었던 날을 돌이켜본다. 사람이 보고 싶고 책방이 가고 싶고 골목도 그리워지고 신록이 우거진 꽃들의 장관을 봐야 할 텐데 머뭇거리며 참아야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우리보다 온몸을 하얀 가운으로 칭칭 감으며 환자를 돌보는 손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이렇게라도 견디며 조용히 집을 지키며 동의하는 것으로 칼의 무늬를 지워야 하는 그날까지 기다리는 법을 깨우치는 마음으로 의료진과 국민의 협조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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