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 감상 / 허연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가장 화려한 사람들은
그 화려함으로 외로움을 배우게 된다.
⸺《김현승전집 詩》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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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이가 많이 드신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살면서 느끼셨을 외로움과 상처가 나이테처럼 떠올려진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그 나이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이해한다. 연약하고 초라해진 아버지의 등을 보면서, 아버지의 주름을 보면서 나의 삶을 생각한다. 결국 나도 누군가의 나이테가 될 것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게 인생인가 보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
허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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