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오줌 누는 여자 ∥김송포
상상은 다양한 벌이야
모래 위에서 재현된 여자는 상상해 보았다
간절한 시도였다
앉아서 오줌 누는 여자하고 상대하지 말라고 누가 그랬지
서서 오줌 누는 여자하고 상대해보라고 할 것이지
어렸을 때
저지르던 일들은 커가면서 수치스럽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쭈그리고 앉아야 했던 숙련공처럼 길들여져야 했다
차마 실행하기 어려워서 눈길을 피해
남자의 허리 구부정한 사진을 바라보았다
일제히 일어서서
시범을 보여야 한다고 피날레 쳤다
앉아서 본다고 뭉개는 남자가 나약해
오줌을 받아내야 하는 일처럼
불상이 안쓰럽다는 듯 턱을 괴고 끄덕인다
온갖 시선을 낳은 여자의 오줌 누는 행위를
돌고 도는 상황의 이치일 뿐
부끄러운 장면이 아니다
열두 명의 여자들은 당당하게 흑과 백으로 나뉘어
바깥을 향해 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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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걷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울 때 서서 오줌을 누는 남자가 부러웠다.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본능을 조절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그런 본능에서조차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를 내뿜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지금 그런 말을 한다면 어디서든 뺨을 맞겠지만.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성별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군대 문제와 출산 문제는 여전히 팽팽한 시각으로 대치 중이다. 그럴 때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차이를 인정하고 수긍할 건 수긍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말조차 여성 편력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우리의 본능도 길들여진 건 아닐까.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그렇게 흘러온 것은 아닐까. 성별의 역할 또한 그렇게 길들여진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구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닳도록 우리의 생각은 멈추지 않으므로. 그러다 성별이 없어지는 세계와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영화 ‘경계선’을 보면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미래가 겹쳐보이는 환상?을 경험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 역시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나온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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