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페인트칠하기/송찬호

songpo 2021. 6. 17. 15:25

페인트칠하기

 

 

 

 

개에게 페인트칠을 했다

꾀죄죄한 흰 털을

파랗게 칠했다

그랬더니 파란 개가 되었다

 

파랗게 되고부터

개의 행동양식이 바뀌었다

앞발로 자주 땅을 팠다

먼 개의 조상을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개와 인간 사이의

새로운 계약을 요구했다

여행 계획을 짜고

마르크스를 읽기 시작했다

 

개의 파란 꼬리는

로켓 추진 같다

조금 전에도 엄청난 속도로 내 앞을 달려 지나갔다

주위가 저리 분주하니 정작 해야 할 지붕 칠하기 작업은

당분간 미뤄둘 수밖에 없다

 

파란 개가 컹컹 짖는다

파랗게 짖는다

새롭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다

다음번엔 차분한 보랏빛 페인트를 준비해볼까

파란 털이 꾀죄죄해질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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