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나방
박성우
아내가 겉보리 한 자루를 사 왔다
아직 방아를 찧지 않은 것인데
베란다 화분에 심어 키워서는
새싹비빔밥도 해 먹고
보리된장국도 끓일 거라며 들떠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 아내는 제법
근사한 직사각형 화분까지 새로 들였다
겉보리를 심고 물을 주는 아내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자르지 말고 그냥 키우면 안 될까,
몇 번인가 나는 아내가 해주는
새싹비빔밥을 말끔히 비웠고
보리된장국을 뚝딱 해치우기도 했다
어디서 이런 게 날아 들어왔지,
늦은 밤 비명을 지르는
딸애 방에 들어가 보니
나방이 침대 위로 날고 있었다, 딱!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방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날아다녔고
집안 벽에는 얼룩이 날로 늘어갔다 나는
나방의 근원지를 찾아내야만 했다
아 여긴가? 베란다 구석에 있던
보릿자루 안쪽은 나방의 천국이었다
자루를 그대로 눌러 닫은 나는
그것을 냉동실 안쪽에 욱여넣어
나방 천국의 열기를 아주,
식혀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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