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팔작지붕, 그늘

songpo 2013. 12. 1. 20:36

 

팔작지붕, 그늘

 

 

 

김송포

 

 

 

  어릴 적 놀던 그늘이 있다. 아득한 기와집이다. 대문과 마루와 방들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이웃들이 대문 앞에서 맞이하였다. 왜 이제 왔느냐고 맨발로 나온다 백 년을 기다렸다. 말할 수 없는 그늘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도시와 빌딩을 기웃거리며 골목으로 돌아오듯 고양이가 집을 둘러본다. 콩팥에서 오줌이 새는 줄 모르고 허겁지겁 시간을 먹으며 백 년 동안 뒤를 안 보고 걸었다

 

  '그대로 놓아두세요' 말하듯 팔작지붕은 눈이 오면 맞고 비가 오면 새고 번개를 쳐도 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아이들이 떠나가도 지붕 아래에서 뜨개질하며 기다렸다. 팔작집 온돌방에서 하룻밤 묵는다. 엄마의 젖을 더듬듯이 툇마루에 앉아 밤하늘 만진다. 별똥은 일억 광년 달려 마당에 떨어진다. 시골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고 도망치던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붕 추녀가 유난히 길게 하늘을 향한다. 성당에는 가끔 남학생을 보러 드나들고 은행나무 밑에서 낙엽 뿌리며 깔깔거리던 영자의 웃음이 낙엽처럼 구르고 마당에서 비석치기 하던 기억들이 쏟아진다. 툇마루에 앉아 북두칠성을 찾아본다

  백 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고양이가 그늘에서 팔작지붕을 보고 또 보듯이

 

 

 2013 <시와표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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