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양복 깃의 배지

songpo 2014. 1. 3. 21:19

양복 깃의 배지
                   
                                                                                                김송포
 
 
스승의 훈장이 햇살 아래 빛이 납니다
사촌 형이 사다 준 꽃신을 신고 여자아이로 놀림 받으며 수줍어했습니다. 엄한 아버지 얼굴을 평생 삼 년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 그늘은 쓸쓸했고 강인한 어머니 밑에서 푸른 시절이 앙상했습니다. 안경은 코 밑으로 비늘처럼 흐르고 몸은 약골로 이유 없이 말라갔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틀니를 해야 하니 이가 없어도 웃지 말라며 입을 가렸습니다. 칠십평생 질마재 마을 아래의 기운을 받아 숭배하던 미당의 뒤를 쫓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묘지 앞에 술을 따르며 자신의 백제 시에 상징을 태운 지 반백입니다. 백제 시대 금관과 귀걸이와 탑에 계백의 칼을 얹으며 오십 여년 은막의 뒤에서 마술 부리는 연금술사가 옆에 있습니다. 풀에 맺힌 이슬처럼 깃에 문화 훈장이 붙여지자 평생 별을 주물럭거린 사례로 위로의 잔이 건네집니다. 폭포처럼 격하게 때론 몸부림치며 언어를 깎습니다
 
물이 깊은 파래 沼에 빠져보아라. 실타래를 풀어보아라. 날것으로 먹지 말고 이미지 만들어 관을 씌워라. 비틀고 비틀어라

깃의 별 한 닢,
황금빛 훈장이 이마에 그어진 주름보다 짙게 번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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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딴지 

 

평택호 옆에 줄지어 늘어선 국화의 사촌이
서쪽 바람맞으며 실실 웃고 있다
호수로 걸어가던 사내는
여인에게 주어야 한다며 호미로 땅을 긁어대자
알맹이가 줄줄이 달려 나온다

어,
흙 속에서 헛소리들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하네
이게 뭐지
거짓부렁이야
그동안 누르고 살아온 혹이
툭, 불거져 나온 거야
엉뚱하게 돼지가 먹으면 아깝지 않을 감자는
땅속에서 세상을 엿듣고 있었던 거야

여기저기 파고 또 파도 튀어나오는 구호가
공약남발 하듯 중얼거리고 있다
이 땅에 속고 속아 넘어 간 사람은 말똥구리처럼 잘살고
개털로 웃겨야 하는 일이 많아
진실은 구덩이에서 꺼내고 거짓은 꽃으로 가려주고
수작은 걸레로 닦아야 해

겨울호수에 물이 얼어붙었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헛소리는 더 크게 왕왕 울린다

---- 2014. 미네르바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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