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산책 /이병률
남산을 지날 때면 점(占)이 보고 싶어진다
왜 흘린 세월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꼬리가 있었는지 뿌리를 가졌는지
남산에서는 오래전을 탈탈 털어 뒤집어쓰고 끊어진 혈을 여미고 싶다
이빨이 몇이었는지 불에 잘 탔는지
모가지는 하나였는지 화석은 될 만했는지
절없는 기미들을 가져다 멋대로 차려놓고 싶다
간절히 점을 보고 싶다
삭제된 것들의 입장들
우물쭈물하는 옛날들
세수 안 한 것들의 밤낮들
끝이 언제인지 모르면서
나에게 잘 해주지 못한 안색들
결국은 이것들로 목숨 한 칸의 물기를 마르게 할 수 있는지를
조심하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며
곧 해결될 거라는 말도 아닌
어서 끝내라는 말만 듣고 싶다
풍부한 공기에 대담히 말을 풀어놓고 싶다
이 숲 나무에서는 소금 맛이 나는지
그 맛에 사람 맛이 들어 있는지를 알고 싶다
나에게 이토록 박힌 것이
파편인지 비수인지
심장에서 내몬 사람이 하나뿐인지
사람을 갖겠다 해놓고는 못 가졌으면서
훗날 다른 생에서도 사람을 갖고 싶은지까지도
—시집『눈사람 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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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마음을 건드리고 갈 때면 점을 보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나를 스쳐간 것들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우물쭈물하다 놓쳐버린 기회들은 어디로 갔는지, 오래전 불에 던져 넣은 치아는 어떻게 되었는지, 가슴에 맺힌 것의 실체는 무엇인지, 인생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앞날은 어떤 것이었는지……. 인생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만약~했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지요. 그때 만약 다른 길을 갔더라면, 그때 만약 한 번만 더 뒤돌아보았더라면, 혹은 그때 그 사람을 잡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최형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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