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축 생일 /안현미

songpo 2015. 1. 23. 12:12

축 생일

 

   안현미(1972~ )

 

 

오늘은 내 생일인데 밥상이 날아가고 핸드폰이 날아가고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삼겹살이 날아가고 소주병이 날아가고

 

뜻밖의 밤

 

오늘은 내 생일인데 생일 폭죽처럼 머리통이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돈, 돈, 돈 우린 돈 게 분명해

 

뜻밖의 밤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울리는 알람이 있다고 믿는다 했다 꼭 사랑이 아니라도 울리는 알람이 있다는 말은 생략, 그건 좀 슬픈 이야기니까

 

뜻밖의 밤

 

우리는 사랑을 향해 동행할 수도 있었는데 늙은 저녁 서로의 외롭고 긴 외출을 기다려줄 수도 있었는데 가난한 내가 무작정의 우리로 확대될 수도 있었는데 대략 그 정도의 빚을 지고 싶었을 뿐인데

 

뜻밖의 밤

 

밥상이 핸드폰이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던 삼겹살이 소주병이 날아가고 오늘은 내 생일인데 사랑해, 라는 말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작별을 생일 선물처럼 들고

 

뜻밖의 밤

 

영원히 그 코 없는 밤은 오지 않을 듯이*

뜻밖으로 이마가 맑아지는

 

 

  ————

  * 이상의 시 「아침」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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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살림에 이 시인의 작품만큼 밀착한 경우를 우리는 거의 처음 볼 테지만 이 시의 절묘한 효과는 ‘~인데’의 음 높이가 다중으로 복잡 미묘하게, 풀 죽어 낮은 듯, 어이없어 옆으로 튀는 듯, 신경질 아닌 당당한 고성인 듯, 한꺼번에 들린다는 것이다. 상태가 갈수록 절망적으로 되지만 ‘뜻밖으로’, 동음이의(同音異義) 장난이 ‘생략’을 바로 도약으로 만들고 생일이 생 전체고 결론은 ‘뜻밖으로 이마가 맑아지는’ 정말 완벽한 살림 솜씨 아닌가.

 

  김정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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