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을 붙이고 서 있던 여름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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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은 이미 여름의 절정이다. 금빛 햇빛이 도처에 타오르고 산딸기는 잎사귀 뒤에서 빨갛게 익는다. 숲이 서늘한 녹색 그늘들을 기를 때 칠월은 ‘행복’과 ‘무심’ 사이로 흘러간다. 어떤 연인들은 파경과 이별을 겪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진다. 여름날이 늘 천국은 아니다. 우리에게 당도한 칠월엔 ‘체념’이나 ‘흑백영화’,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잊은 그대’도 있다. 과거라는 빗물에 쓸려가 버린 나날들. 그랬으니 골을 파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빗물 속에서 문득 ‘당신’이 비치기도 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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