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구름 애인 /최문자

songpo 2015. 8. 4. 17:59

구름 애인

최문자

한 남자를 사랑했다

짐승 안에 들어 있는 구름 같은 남자

짐승에게 구름 같은 게 있을까 싶지만
뒤집으면 구름이 펄럭거렸다

짐승이 뭉개뭉개 달아나던 미루나무 끝가지
까맣게 멀리서 소낙비가 오고있었다
구름이 바늘처럼 따갑게 쏟아졌다

구름을 만지고 싶어서
어쩌다 한 마리 짐승을 사랑했다
구름 같은 짐승
설산에 가끔 출몰한다는
털이 따가운 짐승

짐승에게 눈물 같은 게 있을까 싶지만
뒤집어보면
짐승의 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젖은 몸으로 설산을 기어오르는
반투명 구름의 기쁨

자작나무 숲에
구름 같은 짐승이 살았다.
따가운 사랑이 있었다

—《유심》201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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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 서울 출생.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귀 안에 슬픈 말 있네』『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울음소리 작아지다』『나무 고아원』『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사과 사이사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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